키모브레인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간다. 뭐 해 먹지 고민하며 핸드폰을 꺼내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앞에 서서 핸드폰을 열었는데... '어라? 내가 핸드폰을 왜 열었지?'
요즘 들어 분초 단위로 순간의 기억이 사라지곤 한다. 말하고 싶었던 단어도 기억이 나지 않아 나이 탓을 해보려니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고 혹시 치.. 치매인가 싶어 증상도 검색해 본다. 갑자기 거미의 '기억상실'이 bgm으로 깔리면서 손예진처럼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닌지 혼자 감상에 젖을 때도 있었다.
사실 내가 겪는 멍해짐, 기억력 저하, 집중력 저하는 항암 치료 후 보편적으로 겪는 부작용 중 하나이다. 키모브레인이라고 부르는 이 증상은 'chemotherapy'와 'brain'의 합성어로 화학 요법(항암 치료)으로 인해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역역의 일시적 세포 감소로 발현되는 증상이다. 항암 치료뿐만 아니라 수술이나 방사선치료에 의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수술도 많이 했고 방사선도 어릴 때 받았고 항암도 여러 차례 겪었으니 증상이 생기는 게 당연한 것이구나 납득하게 된다. 그동안 손발톱이 까매지고 머리카락과 눈썹이 싹 빠지는 걸 보면서 이렇게 정상세포가 죽는구나 인지했는데 뇌세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 없지. 원래도 집중 시간이 길지 않고 잘 깜빡깜빡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지만 재발 후에는 증상이 눈에 띄게 심각해지긴 했다. 네이버 선생님께 여쭤본 바로는 그래도 5년 안에는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호들갑 떨지 않고 지켜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제 잘 까먹는 걸 나무라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해야지!
'나, 키모브레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