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에 대한 단상
(1) 부제: 스스로 풀어야 할 오해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암을 지난 후 가족과 친구들에게 건강 챙기라는 말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어, 그래야지.'라고 답하고는 집에 돌아와 혼자 생각에 잠긴다. '난 뭘 하고 싶은 거지?' 휴식을 빌미로 빈 시간이 많은 요즘 반복되는 이 질문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남은 생은 원하는 대로 살 거라며 야심 차게 도전해 보려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
그래서인지 때로는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는 말이 불편할 때가 있다. 흘러가는 대로,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나의 지난 삶이 부정당하는 기분이랄까? 마치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해 병을 얻은 것만 같잖아. 사실 불편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들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나의 꼬인 속이 문제이리라. 덕과 업이 일치된 삶을 사는 사람이 부러웠고 그들 내면에 차올라있는 단단함과 당당함에 질투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덕업 일치'라는 생각의 프레임에 갇혀 고이고이 쌓아온 10년 넘는 직장 생활은 어느새 까만색 물감으로 덧칠되어 지우고 싶은 순간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다. 나는 일을 사랑했고 더 잘하고 싶었다. 그 일이 저-엉말로 내가 원해서 했던 일들은 아닐지라도 나는 최선을 다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직장인이었다. 첫 제품이 나왔던 순간, 바이어에게 손을 떨면서 발표했던 날, 동료들과 미친 일정을 소화하면서 유쾌함을 놓지않으려 정신 나간 행동을 한 기억들, 내가 만든 제품들을 사람들이 신고 다닐 때의 희열. 뿌듯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암]이라는 또 다른 순간 때문에 지저분하게 왜곡시키지 말아야지.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세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덕업 일치의 삶을 살겠는가?
스스로 만든 오해는 이쯤에서 풀기로 하고 선물같이 주어진 이 시간들에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재밌게 살아보기로 다짐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