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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수집가 지니 Sep 04. 2023

[환우에세이]
빨간 약을 아십니까?

트라우마 극복기 (1)



© laurisrozentals, 출처 Unsplash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색깔은? RED. 탱고를 추는 여인의 드레스도, 머리에 꽂은 코르사주도, 부채도 빨간색. 샤넬의 매혹적인 립스틱 색깔도 빨간색. 빨간색은 열정적이고 활기가 있어 보여 운동회나 야유회 때 티셔츠는 꼭 빨간색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항암 치료제 중 AC라고 불리는 것을 맞아본 사람에게 빨강의 의미를 물어본다면 꽤나 회의적일 것이다.


들어는 보았는가? '공포의 빨간약.' 유방암 관련 카페나 블로그에 가면 빨간약 이야기는 빠지질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난 두 번째 만난 암 당시 TC 항암(도세탁셀+엔독산) 조합을 맞았기에 빨간약은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장담했건만 빨간약에 완. 전. 히. 당했다. 한 번 맞은 항암제에는 내성이 생길 가능성이 높기에 같은 약을 쓸 수 없어 AC(에이디마이신+엔독산) 조합에 당첨됐다. 에이디마이신이 공포의 빨간 놈인데 이 친구의 가장 큰 부작용이 메스꺼움과 구토다. 다른 분들의 부작용 후기를 안 찾아봤더라면 그 정도로 겁을 먹지 않았을 텐데 이미 온갖 빨간약 부작용이 내 머리에 각인이 된 상태라 당일 아침에는 약을 맞기도 전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었다. (이 대목이 내가 멘탈 쫄보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주치의가 마음 편히 가져도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빨간약 투여가 시작되었고 그날 저녁부터 나는 초주검 상태에 들어갔다.


물이 원래 이렇게 비린내가 심했던가, 주방 세제가 원래 이렇게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이었나, 사탕은 왜 이렇게 역하게 달단 말인가. 도무지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흰쌀죽 두세 숟가락과 엄마의 동치미 국물로 일주일을 겨우겨우 버텨냈다. 입덧 증세와 같다고 하던데 이렇게 미리 경험해 보나 싶기도 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아침은 눈을 뜨자마자 다가오는 고통에 남편을 보고 펑펑 울며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가 디지게 혼났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을 넘어서니 다음 항암이 너무 두려웠다. 앞으로 세 번 더 이걸 어떻게 해내지? 이 독한 약을 8회, 12회 맞는 분들은 대체 어떻게 견디시는 걸까. 2차, 3차, 횟수를 거듭할수록 만감이 교차했고 병원에 발을 들여놓기만 해도 속이 뒤틀리고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상태에 이르렀다.


나에게 레드와 병원은 그렇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내일,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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