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나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감사
어제부터 밤비가 우리집에서 지낸다. 내일까지 있을 줄 알았는데 일이 해결되어 오늘까지 있기로 했다. 같이 지내자는 부탁을 들었을 때는 몇 년을 혼자 지내던 나라서 밤비가 내 이기심으로 힘들어하진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몇 개월을 붙어다니며 같이 산 적이 있다. 내 자취방에 거의 동거하듯 살았다. 그 좁은 방에서도 신나게 술 마시며 같이 자고 놀았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이였다. 조잘거리는 편은 아니지만 그냥 같이 있다는 자체로 좋았다. 말이 많은 친구는 아니니까. 나도 요즘 말 실수 하는 게 싫어서 말을 아끼고 말이다. 평소에는 맛 없는 밥을 힘없이 씹고 있다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흘러보내기 일쑤인데 친구랑 같이 있으니까 뭘 먹을 지도 고민하게 되고 요리도 하고 싶어졌다. 그 고민이 즐겁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내가 신나게 만든다. 오늘은 기대한 오일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뜻밖의 마지막 저녁을 위해 한우를 사러 갔다. 큼직한 채끝 두 덩어리가 너무 비싸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가격을 보니 무난해보여서 기쁜 마음으로 모두 사왔다. 밤비는 파스타를 만들었다. 프라이팬이 하나 뿐이어서 파스타를 다 만들고 내가 스테이크를 구웠다. 1인 가구 요리수업에서 배운 능력이 빛을 발했다. 마리네이드도 야무지게 해서 스테이크를 굽고 그때 만든 플레이팅 도마도 써 먹었다. 신기하게도 스테이크 한 덩어리에서 미디엄 웰던부터 미디엄 레어까지 다양하게 나왔는데 우리는 만족스럽게 저녁을 먹었다. 같이 있단 사실만으로 나는 더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설거지도 바로 해버리고 해야하는 글 쓰기와 책 읽기도 마쳤다. 출근도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한다. 먼 데서 친구가 놀러오면 나는 일과를 제쳐두고 그 사람과 시간 보내려고 애를 쓴다. 그렇지만 밤비는 요며칠 같이 살아가는 거라서 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외롭고 고요한 집에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아 누군가와 생활을 공유하는 건 행복한 일이구나. 좀 더 머무르다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래도 자기 집이 제일 좋을 테니 그런 고집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며칠의 따뜻함과 부지런함을 알려준 밤비에게 감사.
추가 이야기. 내가 다짐하는 건 많지만 이루는게 적어서 아쉽다고 하니까 자기가 도와주겠단다. 올해 연말까지 나는 다짐한 것들을 해내지 못하면 밤비한테 벌금을 낸다. 악착같이 살아야겠다.
2. 손글씨를 자랑할 용기가 있음에 감사
어제부터 책을 읽고 그 느낀 점을 일기장에 써서 인스타에 올리기 시작했다. 고백 하나 하자면 그 글은 뻔한 생각에 가면도 쓰고 있는 못난 글이다. 내 일기장은 구토하다시피 생각을 뱉어내는 곳이다. (요즘은 속이 편안한지 그런 생각을 쏟아내기가 귀찮다. 블로그에 글을 마구 쓰게 된 것도 속이 편안해진 이유가 될 테다.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들, 부끄러운 일들이지만 나들이 은근히 재밌어 한다는 점도 내가 글을 줄줄 보여주는 이유가 된다.) 이번 일기에서는 솔직하진 못했다. 책 내용을 담아야 했기에, 틀리면 고칠 수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정돈되었지만 얄팍한 뜻을 담은 말들로 꾸며 썼다. 진짜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조벽 교수님의 글은 좋았다. 그런데 내가 오늘 얻은 건 전에 얻었던 내용이랑 똑같았다. 다시 읽은 보람이 없는 기분이다. 그 내용을 읽은지 10개월 가까이 지났음에도 그걸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절반 정도 읽다 만 그 때의 지식과 한 권을 통으로 읽은 지금의 배움이 별 차이가 없다는 한심함이 뒤얽혀 복잡해졌다. 그렇지만 어제부터 글을 써 올렸기 때문에 나는 근성있는 사람처럼 보이려면 어쨌거나 또 한 바닥 채워서 찍어올려야 한다. 그 글을 쓴 나와 지금 블로그에서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글씨로 칭찬을 들은 적이 있어선지 더 당당하게 엉망진창의 글을 올리는 내가 대단하다. 내일은 좀 더 느끼면서 글을 읽고 다시 쓰고 싶다. 부끄러워야 성장한다고, 천상 관심 종자인 내가 발전하려면 이렇게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며 다독이고 오늘도 뻔뻔한 용기에 감사하려 한다.
3. 나의 선물을 소중히 해 주는 우상이 있음에 감사
대장님은 내가 참 좋아하지만 참 어렵다. 그 사람만큼 선을 잘 지키는 사람도 못 봤다. 나도 더 가까이 갈 생각도 안하지만 바짝 붙어앉아주는 다른 선수님들을 생각하면 대장님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가끔 서운할 때가 있다. 행복하려고 하는 덕질에서 서운하면 되나! 그리고 이 사람한테 내가 기대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 생각했을때 또 그런 사이는 절대 아니다. 법륜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수 밖에 없는 이 사람을 사랑한지 5년이 되니 나도 이제는 그 사람을 닮아가는지도 모르겠다. 편안하고 바라지 않지만 서로를 믿고 있는 중, 우리는 아마 그런 사이일 테다. 서로를 위해 챙겨주고 그걸 고마운 마음으로 받는 사이, 호들갑은 떨지 않고 조용히 웃는 그런 사이. 그러다 오늘 대장님의 거울 셀카를 보게 되었다. 1년 전에 선물했던 폰 케이스와 월드컵 때 선물 포장지에 붙혀 뒀던 스티커를 핸드폰에 붙이고 있었다. 여느 선수님들처럼 선물들을 내게 보여주진 않아서 이제는 내 선물을 그저 받기만 하고 마는 줄 알았는데. 무던하고 무뚝뚝한 사람이 그 소박한 선물을 들고 있단 사실이 행복했다. 귀엽다. 국가대표이자 팬들의 마음을 소중히 여겨주는 당신에게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