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31일, 슈퍼문이 뜬다는 날이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또 강화도에 갔다. 우리는 초지대교 근처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 카페에 갔다. 가족은 먼저 카페에 들어가고, 나는 카페 마당에서 주변경치를 둘러보았다. 아주머니께서 가판대에서 고구마, 땅콩 등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나는 가판대로 가서 아주머니와 농사짓는 일과 농촌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카페에 들어갔다. 가족은 창가 작은 방에 있었다. 나는 차를 마시고 빵을 먹은 뒤에 가족에게 시를 낭송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날 내가 준비한 시는 이스라엘 시인, 예후다 아미카이(Yehuda Amichai, 1924~2000)의 <어떤 사람을 잊어버린다는 것>과 <에인 야하브>였다.
나는 먼저 <어떤 사람을 잊어버린다는 것(Forgetting Someone)>을 낭송했다.
어떤 사람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뒤뜰 전등을 끄는 걸 잊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것은 다음날 내내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때 그것은 당신이 기억하도록 만드는 빛이다.
(출처 : 예후다 아미카이의 선택된 시들(The Selected Poetry of Yehuda Amichai). 전문)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시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만남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만나지 않거나 연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돼? 조금씩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사라져. 점점 시간이 지나면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잊고 지내지. 그런데, 어느 날, 잊어버렸던 그 사람이 떠 올라. 그 사람이 보고 싶어. 아무리 그 사람의 이름을 떠 올리려고 하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아. 그러면 어떻게 해? 그 사람과 만났던 장소, 그때 나눈 이야기, 그 사람의 인상착의 등을 떠 올리려고 무척 애를 쓰게 돼. 한 참을 생각하면 어렴풋이 그 사람의 이름이 떠 오르기도 하고, 또 그 사람의 이미지가 떠 올라. 우리는 이 과정에서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지. 이것은 마치 우리가 뒤뜰 전등을 켜두어 다음 날 내내 전등이 켜져 있는 것과 같아. 우리는 그 전등을 보고는 "아, 잊어버렸구나, 안 껐구나"라고 생각하고 전등을 끄게 돼. 우리가 무엇인가를 잊는다는 것, 잊어버린다는 것은, 마치 전등을 끄지 않음으로써 전기를 쓰듯 안 좋은 것인데, 우리는 그 사람을 잊어버림으로써, 기억 속에서는 사라지지만, 어느 순간에 그 사람이 보고 싶어 그 사람을 떠 올리고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다시 그 사람을 기억하고 생각하게 돼. 이것이 '잊어버림'의 역설(paradox)이야. 우리가 잊어버림으로써 다시 기억하는 것은 단지 사람이나 단순히 사실만은 아니야. 그것은 지난 역사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의 소중한 추억일 수도 있고. 잊어버린 책들, 비 오는 날 닫지 않은 창문 등. 그 무엇이든 잊어버림은 우리가 다시 기억하도록 만드는 빛이라는 거야. 짧은 시에 많은 것을 담고 있어."
이어서 나는 <에인 야하브(Ein Yahav)>를 낭송했다. 낭송 전에 나는 아라바는 지역 이름이고, '에인 야하브'는 '희망의 원천(Wellspring of Hope)'이라는 뜻을 가진 모샤브(농업공동체)라고 말했다.
아라바 에인 야하브로 야간 운전.
우중(雨中) 운전. 그렇다. 비가 오고 있다.
거기서, 나는 야자수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을 만났다.
거기서, 나는 큰 에셀 나무들을 보았다
거기서, 나는 희망이 가시철사처럼 가시가 돋친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것은 진실이다. 희망은
절망을 쫓아내기 위해 가시철사처럼 되어야 한다.
희망은 지뢰밭이어야 한다.
(출처 : 인터넷(www. poemhunter.com), 전문) * 에셀나무 : 상수리나무 일종
나는 시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사람에게 희망은 중요해. 사람은 사랑으로 살*뿐만 아니라 희망으로 살기 때문이야. 사람에게는 희망이 필요해. 사람에게 희망이 있어야 꿈을 꾸거든. 희망이 꿈보다 먼저야. 그런데 희망이 모두 꿈이 되고, 꿈이 비전이 되고, 비전이 목표가 되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야. 희망은 가끔 어떤 상황 앞에서 실망을 안겨 주고, 절망으로 변하기도 해. 그렇게 나아지고 변화될 것 바라고 희망하였지만 상황은 변화하지 않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상황은 나아지거나 변화될 조짐이 없어. 앞이 잘 보이지 않고, 희망이 없는 것 같아. 이러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희망이 절망이 되지 않도록 가시철사처럼 가시가 돋치게 하고, 또 희망은 절망을 쫓아내기 위해 가시철사처럼 되어야 한다는 거야. 여기 옆에 포도밭이 있잖아. 밭에 울타리를 치지. 포도를 보호하려는 거야. 지뢰밭은 히브리어로 '세데 모크심'(שדה מוקשים)인데**, 영어로는 마인필드(minefield)야. 마인필드는 광석 매장지, 지뢰밭 두 가지 의미가 있어. 마인필드를 광석매장지로 해석하느냐 지뢰밭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어. 희망은 광석 매장지처럼 광물이 쏟아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어. 그러나, 아빠는 마인필드를 지뢰밭으로 번역했어. 문맥적으로도 그렇고, 지뢰밭에는 아무나 못 들어가듯이, 희망은 지뢰밭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뜻이야."
* 레프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참조
**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표기
지난 몇 년간 나는 한 가지 희망을 품고 살아왔다. 그것은 영어공부의 어려움을 줄일 좋은 방법, 우리가 직면한 영어교육문제를 해결할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이 희망을 붙잡고 싶었다. 나는 희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 희망을 "가시철사"로 보호하고 싶었다. 나는 희망을 붙들기 위해 꿈을 꾸었다. 나는 "꿈이 무엇일까?"생각했다. 꿈을 영어로 DREAM이다. 나는 DREAM의 다섯 알파벳(D, R, E, A, M)을 생각하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대표하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D에 대해 생각했다. D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들을 떠 올렸다. Day, Deep, Do, Define, Dry 등 몇 가지 단어들이 떠 올랐다. 이 중에서 '정의하다'의 뜻을 가진 Define이 D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을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R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떠 올렸다. Rest, Rain, Reach, Rise 등등. 이 중에서 '도달한다' '이루어진다'의 뜻을 가진 Reach이 R의 의미를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 꿈은 결국 '이루어진다'라는 점을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E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생각했다. Eye, Expand, Expect, Expanse, Earth 등등. 이 중에서 '기대한다'라는 뜻을 가진 Expect가 E의 의미로 적절할 것 같았다. 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꿈이 영어교육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발전,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기대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A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떠 올렸다. Across, Align, Appear, Attribute, Awesome 등등. 이 중에서 '자질, 속성'의 뜻을 가진 Attribute가 A의 의미를 잘 드러낼 것 같았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의 '자질과 속성, 더 나아가 나의 역량'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M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떠 올렸다. Make, Maximize, Maintain, Miss 등등. 이 중에서 '극대화하다'의 뜻을 가진 Maximize가 M의 의미를 잘 드러낼 것 같았다. 나는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 내가 개발한 자질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알파벳으로 단어의 뜻을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단어놀이'이다. 이 놀이는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려 주었다. 꿈을 정의해야 했고, 꿈이 이루어진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또한 꿈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나의 자질과 역량을 개발하며, 또 나의 자질과 역량을 최대로 발휘해야 했다. 나는 다섯 가지 꿈의 의미를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