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촌 전선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너도 나와 같구나' 생각하며 비둘기를 찍으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다른 비둘기가 날아와 곁에 앉았다. 전선줄은 위아래로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비둘기들은 한동안 같이 앉아 있었다. 한 마리가 위로 날아가니 덩달아 다른 비둘기도 위로 올라앉았다. 얼마간 같이 숲을 보더니 먼저 올라간 비둘기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조금 뒤 다른 비둘기도 내려갔다. 그들은 몇 번을 반복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니 한 마리가 숲으로 날아갔고, 다른 비둘기도 따라 날아갔다. 숲에서 비둘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가슴을 열어 공기를 들이마셨다. 한편으로는 마음의 불을 끄려는데 다른 한편에서 이름 모를 불길이 솟았다.
6월 중순에 어느 모임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문학 강의를 들었다. 그날 강사는 그가 쓴 단편들 중 『남부』등 두 작품을 다루었다. 그의 글은 유월 마지막날 먹었던 복숭아처럼 상큼했다. 그 이후 그의 소설집 두 권을 샀고 그의 문학에 관한 강의도 유튜브에서 들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픽션들』작품에 대한 해설에 "이 소설집에 나오는 열일곱 개의 단편들은 크게 <문학 이론>을 소설화시키고 있는 작품들과, <형이상학적 주제>를 소설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는 두 범주로 나뉜다."라는 말이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보르헤스 전집 2, 픽션들, 황병화 옮김, p.285). 오늘 아침에 신유진 씨의 산문집 『상처 없는 계절』에서 '보르헤스의 꿈 이야기'에 관한 글을 읽었다. 보르헤스는 "꿈이 가장 오래되고 복합적인 문학장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1년 7개월 전, 제2인생이 시작되는 날 새벽에 저는 꿈을 꾸었다. 중동의 어느 나라 해변 동굴을 걷고 있었다. 물이 정강이까지 차올랐고 동굴 입구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어요. 입구 쪽으로 가고 있는데, 앞에 STOP이라는 표지가 서 있었다. 교통신호표지판 같았는데, 왜 동굴에 이 표지가 있을까, 생각하는 사이에 잠을 깼다.
나는 꿈꾸기를 좋아했다. 꿈이 있을 때 일찍 일어났고 걸음걸이에 활력이 넘쳤다. 꿈이 없을 때 생기를 잃고 방향을 잃었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럴 때도 꿈이 실현될 미래를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하지만 지금 꿈을 회의하곤 한다. 오랜 기간 꿈을 쫓아왔지만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얕고 역량은 충분하지 않다.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오늘 유월의 마지막 날이다. 벌써 반년이 지났다. 내일 올해 하반기가 시작된다. 장맛비가 그치고 여름휴가를 보내고 단풍이 물들면 금세 올해도 지날 것이다. 점점 세월의 흐름에 무감각해지지만, 계절의 변화만큼 제 꿈도 자라고 성숙해졌으면 한다.
6월 중순부터 다시 맨발 걷기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운동기구에서 두발을 교차하며 하늘 걷기를 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언니 모시러 왔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운동하던 아주머니는 "내 못 산다"라고 말하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따라갔다. 유월의 마지막 날,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불을 지퍼"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내 못 산다"라며 못 이기는 척 따라가고 싶다.
아파트에서 바라본 북한산, 바로 앞은 창릉신도시의 끝자락(고양시 행신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