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 아침이었다. 나는 뒷산에서 맨발 걷기를 한 뒤에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아주머니 두 명이 길가 숲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무엇 찾으세요?"
"버섯이요"
나는 어떤 버섯일까, 궁금하여 숲으로 들어갔다. 버섯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길로 나와 한 발을 숲에 걸친 채 내려왔다. 에스자 모양의 비탈길이 끝나고 완만한 지점에 이르렀다. 앞에 참나무 고목이 있었다. 나무 밑에 작은 버섯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버섯을 보았다. 작았지만 은은한 향기가 났다. 버섯을 찾던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했다.
"영지버섯이네요"
이것이 영지버섯이라고? 아주머니의 "영지버섯이네요"라는 말은 영지버섯을 부르는 호명이었다. 영지버섯의 이름을 알고 영지버섯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한 번도 영지버섯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나는 아주머니의 말을 통해 그것이 영지버섯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와는 다르게, 비록 내가 이름을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영지버섯의 이름을 들음으로써 영지버섯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삶의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 이후에 나는 영지버섯을 포함해 버섯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버섯을 보았더니 이전에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 종류의 버섯들이 눈에 들어왔다. 버섯들은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띠며 산에서 자라고 있었다. 대가 볼록한 모양도 있었고, 와인잔과 같은 모양을 가진 버섯도 있었다. 흰색 버섯도 있고 노란색, 붉은색을 띤 버섯도 있었다. 참나무 등 나무줄기에서 자라는 버섯도 있었고, 나무 근처에서 자라는 버섯도 있었다. 홀로 자라는 버섯도 있고, 무리 지어 자라는 버섯도 있었다. 버섯에 대한 관심은 나이 행동과 생활방식에 변화를 일으켰다. 영지버섯을 알기 전에는 동네 마켓에 가더라도 버섯코너를 그냥 지나쳤지만, 버섯을 알게 된 이후에는 버섯코너에 어떤 버섯이 있는지를 살폈다. 나는 또한 영지버섯을 차로 달여 마시기도 하였고, 표고버섯, 능이버섯 등 버섯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다.
어느 날 나는 아주머니께서 "버섯이요"라고 말했을 때, 아주머니의 말에 주의(attention)를 기울었고 영지버섯이네요라는 말을 통해 그것이 영지버섯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나는 아주머니의 버섯이요라는 말에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어떻게 나는 아주머니의 영지버섯이네요라는 말을 통해 그것이 영지버섯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 영지버섯의 향기와 성장방식뿐만 아니라, 효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바로 그때, 나는 이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명은 귀에서 '잉'하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리는 현상이다. 이명현상은 2023년 5월 초순에 갑자기 시작되었는데, 2022년 12월에 퇴직 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불규칙적인 식사와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것 같았다. 그 이후에 나는 병원에서 진단을 하고 약을 처방받은 후에 약을 먹었다. 아침에 공복에는 감자와 마를 갈아먹었고, 뒷산에 올라가 맨발 걷기를 하였다. 또한 짬짬이 집에서 골프공을 활용하여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지압하곤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증상은 많이 완화되었으나 나는 이명과 씨름하며 마지막 퍼즐을 찾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는 영지버섯을 알게 되었건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삶의 상황이 내가 영지버섯을 알아가고, 또 그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삺의 상황, 그것이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데 촉매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