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여행자 Apr 29. 2024

칭송을 거절하는 승무원

본질의 중요성

  승무원들은 승객의 칭송과 불만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래서일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비행 내내 승객들의 기분을 살피느라 온 감각이 안테나처럼 곤두서있다. 승객을 향해 탑승 인사를 하고 있지만 주변에 앉아있는 승객들의 대화를 다 들을 수 있다. 연차가 쌓일수록 이 능력은 경지에 다다른다.


  감사하게도 10년 가까이 비행을 하면서 지금까지 몇 차례의 칭송 레터를 받아보았고, 운이 좋게도 불만 레터는 아직까지 받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받는 칭송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따분한 비행 생활 중 진급 다음으로 의미 있고 뿌듯한 일로 생각하며, 칭송을 마다할 직원은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비행 중 컴플레인을 받는 것만큼 김 빠지는 일은 없다. 불만을 받은 이유가 어찌 됐건 간에 일단 승객에게 컴플레인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나 승무원이 의도한 말과 행동과는 다르게 승객과의 오해로 생긴 불만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 후배의 경우 승객과의 오해로 인해 불만을 받았는데, 비행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퇴사까지 생각할 정도로 한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승무원들은 왜 이렇게까지 칭송과 불만에 예민하게 받아들일까?

  승객으로부터 칭송 또는 불만이 접수되면 회사는 해당 내용을 검토한 후에 등급을 매기게 된다. 마치 수능 등급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단순 서비스에 대한 칭찬이라면 가장 낮은 등급을, 응급 환자가 발생해서 승무원의 훌륭한 대처로 받은 칭송은 높은 등급이 매겨지게 된다.

  칭송과 불만에 연연해하고 싶지 않지만 개인 인사고과에 반영이 되고 이는 곧 승진으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승무원들이 민감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비행 경험이 많지 않았던 막내 시절 불만을 받을까 봐, 또는 어떻게 하면 승객한테 칭송을 받을지 연연하던 때가 있었다. 미성숙한 태도로 비행을 하던 때, 한 사무장님 덕분에 '칭송'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 gitfo, 출처 Unsplash

  퇴근을 앞둔 저녁 비행기 안, 승무원 호출 버튼 한 번 눌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가만히 점프싯에 앉아있기에는 눈치가 보였던 막내 신분이었기에 객실을 몇 번이고 순회하며 승객들을 살폈다. 그러던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승객이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 승객과 이상하리만큼 몇 번이고 눈이 마주쳤다. 보통 승객들은 승무원과 눈이 마주치면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피하기는커녕 잔잔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그녀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혹시나 승무원 도움이 필요한가 싶어 은근슬쩍 그녀 옆으로 가보지만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착륙을 알리는 시그널이 객실에 울려 퍼졌다. 코앞에 있는 퇴근 때문인지, 그녀의 기분 좋은 미소 때문인지 평소보다 착륙 준비를 하는데 더욱 흥이 난다.


  안전 업무를 하기 위해서 객실로 나섰다. 그때 어디선가 "저기요"라는 말이 들려온다. 말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나와 미소를 주고받았던 그 여자 승객이었다.

  ‘역시, 뭔가 할 말이 있으셨구나.’

  “손님,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라며 그녀에게 다가가 어느 때보다 간드러지게 이야기를 했다.

  “저기.. 이 비행 승무원분들 칭송을 써드리고 싶은데요, 여기에 이름 좀 써주세요.”

  그녀는 본인 휴대폰의 메모장을 열어 나에게 건네주며 말을 했다. 마치 이성에게 고백하듯 쑥스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처음 겪는 상황에 난감했다. 그녀의 휴대폰이 이미 내 손에 쥐어진 상태였고, 내 엄지손가락은 휴대폰 화면 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요청대로 승무원들의 이름을 쓸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손님은 앉은자리에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놓고 칭송을 써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쓰고 보지 뭐.’

  나를 포함한 해당 비행 승무원들의 이름을 포함해 해당 비행 편수까지 빼먹지 않고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 vojtechbruzek, 출처 Unsplash

  한 승객과의 대화가 길어지는 듯한 나의 모습을 본 사무장님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저 멀리서 내 쪽으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ㅇㅇ씨, 무슨 일이에요? “

  사무장님의 물음에 마치 사건 현장에서 발각된 범인처럼 놀랐다.

  "저.. 손님께서 칭송을 써 주신다고 승무원들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셔서요..."

  내가 잘못한 건 없었지만 이상하게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사무장님은 잠시 침묵을 하신 뒤 그 승객에게 말을 건넨다.

  “손님, 저희 승무원들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승객이 민망하지 않게 옅은 미소를 띠며 가벼운 목례와 함께 정중히 거절의 표현을 했다. 그러곤 나를 향해 승객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라는 눈빛을 보낸다.

  아쉬움 또는 미련이었을까? 거의 다 써 내려갔던 이름들을 꾸역꾸역 지웠고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녀도 사무장님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맥없이 갤리로 돌아갔다. 갤리에는 사무장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점프싯에 조용히 앉아계신다. 왜인지 눈치가 보여 갤리에 들어서자마자 바쁜 척을 해본다.

  그때 사무장님의 훅치고 들어온 한마디.

  “ㅇㅇ씨, 칭송에 너무 목매면 비행 오래 못해.”

  사무장님의 짧고 굵은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 당시 사무장님의 말이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승객을 향해 칭송을 구걸한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다 같이 칭송을 받으면 모두에게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을 했다. 나의 첫 칭송받을 기회를 놓친 거 같아 사무장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무장의 위치까지 와보니 이제야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승객으로부터 받은 칭송 또는 불만을 통해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고 그로 인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런 상황을 겪게 되면 그 사건 하나로 일희일비하는 경우를 많이 지켜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심을 부리게 되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 본질을 잃어버린다. 칭송에 대한 집착으로 주변 동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불만을 받지 않기 위해 나 몰라라 한발 빠져서 관전만 하는 승무원도 꽤나 있다.

  승무원의 업무 본질에 집중을 하며 비행을 하면 그 결과가 어떻든 미련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이 칭송이 됐건 불만이 됐건 모두 '좋은 경험'으로 받아 들 일 수 있는 준비가 비로소 되었다.



PS.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칭송’과 ‘불만’은 숙명적인 존재인 듯합니다.

막내 시절에는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칭송 써주겠지’라는 어리석은 마음을 가지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이 사건을 이후로 칭송에 연연하지 않고 ‘서비스’ 본질에 충실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마음을 먹고 비행을 하다 보니 이후에 칭송을 더 받게 되었는데요. 참 이상하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