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는 억울하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로라는 엄마인 나, 토리씨, 라라할머니가 주로 돌보는데,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조금씩 다르다.
나는 자립심,
토리씨는 안전,
라라할머니는 인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라(딸)의 생일날 있었던 일이다.
마침 토리씨(남편)도 회사를 하루 쉬었다.
평소에는 라라할머니(시어머니)께서 로라의 등원을 도와주시는데,
그날은 토리씨와 라라할머니가 함께 로라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딩동!
그날 오후 근무 중인 나에게
로라 담임선생님의 메시지가 왔다.
열어보니 생일 모자를 쓴 로라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사진 속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로라 어머님 안녕하세요.
오늘 생일잔치를 했는데, 로라가 속상한 일이 있는지 하루 종일 표정이 안 좋아요.
무슨일인지 물어봐도 이야기 하지 않고
엄마 아빠에게도 말을 못하겠다고 하네요.
로라가 큰걱정이 생긴 것 같아요.
오늘 대화를 조금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메시지를 보자마자 궁금한 마음에
토리씨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 오늘 로라 등원했지? 생일인데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대.”
“아, 그게 말이야. 로라가 횡단보도 건너다가
갑자기 뒤로 돌아서 되돌아가더라고!
너무 위험해서 ‘로라!’ 하며 소리쳤지. 아침에 엄청 혼냈어.”
상황을 이해한 나는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아침에 횡단보도 건너다 되돌아가서
아빠가 위험하다고 혼냈나 봅니다.
생일인데 속상한 마음이 쉽게 안풀렸나 봅니다.
집에서 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일날 혼이 난 로라의 마음도,
위험해서 놀란 토리씨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퇴근 후 집에가니 라라할머니도 아직 계셨다.
토리씨는 퇴근한 나를 보고는 여전히 화가 덜 풀린 듯 말했다.
“여보, 여보가 로라한테 꼭 이야기 좀 해줘.
횡단보도에서 절대 되돌아가면 안 된다고!”
“응, 내가 이야기해볼게.”
나는 로라가 생일날 아빠에게 아침부터 혼이나서
엄마에게 또 혼난다고 속상해 할 것 같아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로라를 불렀다.
“로라야, 엄마랑 이야기 좀 하자.”
말을 시작도 안했는데 내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로라의 눈가가 금세 붉어진다.
“로라야~오늘 아침에 횡단보도 건너다가 되돌아갔어?”
“네…”
“횡단보도는 차들이 다니는 길이라 아주 위험해.
아빠는 로라가 다칠까 봐 엄청 걱정했대.”
그 말을 듣자마자 로라가 으앙~하며 울음을 터트리더니 어깨까지 들썩이며 엉엉 울었다.
나는 로라를 안아주며 토닥였다.
“로라야, 엄마랑 아빠는 로라가 너무 소중해서 그런거야.”
로라를 달래는 나를 보더니 라라할머니가 말씀을 하셨다.
“하니야, 그게 말이지~
로라가 오늘 경비 아저씨한테 인사를 깜빡했거든.
그래서 내가 ‘로라야, 오늘 인사 안 했네!’ 했더니
로라가 깜짝 놀라서 다시 가서 인사하려고 되돌아간 거야.”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평소 약속 잘 지키는 로라가 왜 되돌아갔는지 이해가 갔다.
억울했을 로라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토리씨에게 말했다.
“여보, 어머님 말씀 들었어? 로라가 인사하려고 돌아간 거래.”
하지만 토리씨는 여전히 단호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횡단보도에서 되돌아가면 안 되잖아!”
나는 천천히 설명했다.
“맞아, 되돌아가면 안 되지.
그런데 로라는 장난을 친 게 아니라,
할머니가 불러서 간 거잖아.
그럼 로라 입장에서는 혼자 마음대로 한 게 아니라 오해받은 거야.
이럴 땐 혼내기보다 이유를 들어봤으면 좋았을 것 같아.”
내 말을 듣자 토리씨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제 로라랑 대화해서 마음을 풀면 좋겠어.”
토리씨가 로라 앞에 앉았다.
“로라야, 아빠가 아침에 화내서 속상했지?
찻길이 위험해서 너무 놀랐어.
근데 로라가 경비 아저씨께 인사하려고 돌아간 줄은 몰랐어.
장난친 줄 알고 화가 났던 거야. 미안해.”
“네…”
“인사하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횡단보도에서는 절대 되돌아가면 안 돼. 알겠지?”
“네. 다시 안 갈게요.”
그제야 로라의 얼굴도 풀어진다.
한 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본 나는
셋의 입장을 차분히 듣고 토리씨와 로라가 잘 대화 나눌 수 있도록 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토리씨였다면 과연 로라의 입장을 들을 여유가 있었을까?’
아이도 아이의 입장이 있다.
아무리 옳은 것을 가르치더라도,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먼저 들어보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의 일로 나는 다짐해본다.
옳은 것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로라의 입장을 물어봐주는 엄마가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