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만..

내가 어떤 '주의자'도 아닌 이유

by Allan

건강에 대한 책을 한참 읽던 때가 있었습니다. 약사로서 약에 대한 저의 생각을 잠시 덧붙이자면 약은 필요하고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치료제'라고 하기에는 무턱대고 찬성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봄 환절기에 생기는 꽃가루 등에 의한 알러지에는 알러지 약이 잘 듣습니다. 하지만 이 약은 알러지로 인한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알러지 반응은 돌아옵니다. 진정한 치료제는 본인의 면역력을 정상화 시켜 내 몸이 과잉반응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 치료과정은 알러지 약 복용으로가 아니라, 내 몸의 면역력을 약하게 만든 여러가지 요인을 수정하면서 오랜 시간을 두고 회복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약에 치료제라는 단어를 무턱대고 붙이면 이 약만 복용하면 내 몸이 다시 회복이 되는것으로 착각하고 진짜로 우리가 해야하는 우리 몸을 돌보는 치료과정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약을 치료제라고 부르는 부분에 대해 우려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만약 알러지 약이 없다면? 우리는 당장 오늘 미팅때 콧물을 줄줄 흘리며 프리젠테이션을 해야합니다. 이렇게 단순 증상 완화라 할지라도 삶의 질 향상에 대해서는 그 역할을 무시할 순 없는 것이 제가 제 직업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건강에 대해 책을 읽던 시절로 돌아가서,, 이때에는 사람들을 정말 낫게 하는 "치료약"이 무엇일까에 대해 많이 알고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읽었던 내용인데, 요점은 이러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고기는 비싸고 귀하다' 등의 인식으로 고기를 대합니다. 예전에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고기는 부의 상징이었고, 사실 아직도 '소고기 먹으러 간다'가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책에서 작가는 고기 반찬을 보았을 때, '내가 지금 정말 고기가 먹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묻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지금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먹고 싶으면 먹는다 - 듣기만 하면 너무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머릿속으로는 막연하게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막상 나는 고기 반찬이 있으면 밥은 남기더라도 고기 반찬은 다 먹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입니다. 이렇게 글을 적으면서도 스스로가 좀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는 정말로 고기 반찬은 남기면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30년 넘게 살아왔었습니다. 이 부분이 꾀 참신하게 다가왔던 저는 그 이후로 밥을 먹을 때마다 고기 반찬이 있으면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고기니까' 라고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먹고싶은가'를 생각하면서 먹었고, 별로 먹고 싶지 않을 때에는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먹기 시작한게 지금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고기에서 시작했던 습관인데, 그렇게 연습을 하기 시작하였더니 점점 더 제 인생에서 적용하는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지금은 감히 말씀드리건데 저는 어떠한 유혹이 있을 때 (특히 고기처럼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데 이견이 별로 없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면 고기 반찬을 다 먹지 않았듯이 그 유혹도 제법 쉽게 떨쳐냅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마치 이렇게 생각하는 필터가 제 뇌 어딘가에 장착된 느낌이 듭니다. 얼마전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노트북에 붙일 확장 모니터를 사서 카페나 야외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곤 화면이 양쪽으로 두개 붙는 것과 하나만 붙는 것 두가지가 있는데 양쪽으로 붙는 걸 보고 가격이 비싸다 하기에 제가 노트북 작업할 때 모니터가 몇개 필요하냐고 하니 두개면 사실 괜찮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럼 니가 모니터 하나만 확장하는걸 사면 가격도 싸지고, 니가 필요한 갯수에 맞고 그리고 두개 모니터가 양쪽에 붙어있으면 카페 같은데서 작업하기에 공간이 너무 차지 하는 것 아니냐며 의견을 이야기 했지만 그 친구의 대답은 '그래도 두개 있는게 좋아보이는데..많으면 더 좋지 않을까' 였습니다. 저라면 확장 모니터 한개인 것을 사는데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그 친구의 고민은 계속 됐고 현재도 진행중입니다. 그동안의 연습으로 단련된 제 뇌는 확장모니터가 두개인 것은 지금 내가 먹고 싶지 않은 하지만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고기 반찬과 다를바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고기반찬을 쿨하게 남기고, 물건은 무조건 싼걸로 사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해서 그 '내가 원하는 것'이 결정이 되면 그것이 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그러한 삶을 계속 이어가며 무언가 행복하지 않고 버겁다고 느끼며 그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우선으로 두는지를 안다고 해서 그 삶의 무게가 깃털 처럼 가벼워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 삶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고, 그럴수 있는 힘은 내가 원하는 가치와 현재 내가 추구하며 살아가는 가치가 충돌하고 있음을 인지 할수 있음으로써 그 간격이 너무 커져서 나도 더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기전에 삶의 방향을 그때 그때 수정해나갈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우선시 하는지 알게된 저에 대한 경험은 많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가지가 그것은 바로 저는 경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하든 1등을 하고싶다라는 승부욕도 없습니다. 학교 다닐때 반에서 1등은 물론 전교1,2등을 다퉜던 언니와는 다르게 저는 반에서도 1등이라는 것을 해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1등을 못해서 속상하다는 생각은 한적이 없고 다만 엄마가 화내시겠다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을 또 그냥 그렇게 보고 온 고등학교 어느 날, 어머니께서 "너는 승부욕이 없어? 1등을 하고 싶단 욕심이 없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때의 제 마음 상태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마치 이 질문에 답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응, 난 없어"라고 대답을 주저 없이 했고, 그 대답을 한 제 자신에게 스스로 놀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대답이 정말 나의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저 스스로도 1등이 하고싶지 않은 제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취미 생활을 하는데 상대방과 경쟁을 해서 승부를 가르는 운동은 모두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빠져든 취미 생활은 스노우 보드나 수영, 요가와 같이 남과 겨루어서 누가 이기는 것이 아닌 저 스스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본 계기가 있었는데, 저는 올림픽을 즐겨 보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경기를 보는 것을 피하고 있었고, 어느 날 이것이 바로 제가 올림픽 또한 승부를 가르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 스스로도 참 예민하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올림픽에 나온 그 많은 선수중 금메달을 딴 한 선수만이 환호하고, 심지어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조차 패배자로 보이는 그 문화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제 생각을 내비쳤을 때, "그게 바로 스포츠 세계고 그래서 재미있는 거다"라는 너무 간단한 대답이 돌아오는 것을 들으며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넘어서 '내가 혹시 1등을 못한다는 열등감을 정당화 하기 위해 모든 경쟁에 부정적인 걸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본인은 경쟁을 싫어해서 취미 생활도 승부를 가를 수 없는 운동을 좋아한다는 제 생각과 똑같이 이야기 하는 작가분의 책 구절을 읽으면서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때 원주민의 이야기에 관한 책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런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 작가가 원주민 부족에 갔더니 그들이 니가 바깥세상에서 하는 재미있는 놀이를 알려달라라고 하기에 그 작가가 선을 멀리 두개 그어놓고 달리기를 하자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여기서 시작해서 땅 하면 최대한 빨리 저 다른 선까지 달려가는 거라고 설명한 뒤 다 같이 달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원주민들이 헥헥 거리며 그럼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느냐 하니 작가가 그 도착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이 승자다라고 하였더니, 원주민들이 모두 갸우뚱해 하며 '그럼 우리중에 한사람만 기분이 좋아지는 건데 그게 어떻게 다같이 하는 놀이이냐' 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읽는 순간 제가 올림픽을 보며 불편했던 감정이 바로 지금 그 원주민들이 이야기한 그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제가 경쟁하면서 치열하게 살기 싫어서, 패자가 되기 싫어서 경쟁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100% 이야기 할 수 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아가는 중이니까요. 이것이 제가 제 스스로를 어떤 '주의자'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것을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저는 경쟁해서 나홀로 1등이 되는 것 보다는 경쟁없이 우리 모두 다 2등을 하는 삶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저처럼 생각하시는 얼마 되지 않는 분들이 이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도중에 이 글을 읽고 예전의 저처럼 '나만 그런 생각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공감과 위로를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을 쓰고 싶은 나만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