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건강하게 즐겨라
작년에 한국에 3개월 머물렀을 때 제가 많이 아끼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와 나는 성향이 너무 다른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멋있다고, 장하다고 응원해주는 사이입니다. 그 친구의 그런 말들이 진심임을 알고 있고, 그 친구에 대한 저의 마음도 온전히 진심입니다. 이 친구랑 이야기를 하는 날이면 저는 제 세상에 갇혀서 생각하고 느꼈던 저 자신에게서 벗어나서 그 친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워옵니다.
고백하건데 저는 저랑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제가 찾은 나름의 이유는 앞서 말씀 드렸던 '내가 옳다'와 '너도 옳다' 둘다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도 옳고, 너도 옳으려면' 우리 둘의 의견이 어느정도 비슷해야 제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따라서 저랑 다른 의견이나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그 관계를 지속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느끼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 친구와는 서로 다른 성향에 대해 이야기 하며, 서로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백퍼센트 정말 신기하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봅니다. 저와 생각하는게 많이 비슷해서 제가 '가'하면 '나다라마바~'하는 친구들도 참 소중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게 달라서 그 친구의 신기한(?) 관점이나 생각들을 듣고 집으로 오는 길이면 저의 우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렇게 성향이 많이 다르지만,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이 비슷합니다. 그것은 바로 -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며 치열하게 살고싶지 않다 - 라는 점입니다. 내가 내 기준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혼자서 싸워야 할 상대가 있는데 그게 바로 세상의 기준에 만족하며 사는 '주류'의 사람들입니다. 그 친구가 어느날 "나는 이렇게 살고 싶은데, 지금이 좋은데, 더 치열하게 살아서 이뤄놓은게 많은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내가 질투 하는건가?" 그친구가 그렇게 이야기 했을 때 저는 바로 친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고민을 제가 경쟁을 싫어하고, 세상이 말하는 성공한 삶과는 멀게 살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이미 했던 고민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주류로 사는 것이 더 편안한 내 자신을 알게 된 순간, 주류로부터 느끼게 되는 어쩔수 없는 '나는 그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항상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했던 30대 초반, 외모로도 그런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 이제 나는 늙어만 갈 것인데, 객관적인 '이쁨'은 이제는 사라질 것인데 젊고 피부가 좋으면서 예쁘기까지 한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평생 질투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 때 제가 깨달은 생각의 방법이 있었고, 그 방법이 너무 효율적이어서 저에게 더이상 질투라는 단어가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보다 더 돈이 많이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를 갔습니다. 아주 크고 깨끗한 집, 화장실 마저 호텔 같이 고급스러운 그 느낌,,, 우선 (저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이러한 상황이 오면 '와~~ 너무 좋다'라는 저의 아주 당연하고 일차원 적인 반응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느끼고, 친구에게도 제가 느낀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밀려오는 제 생각들입니다. 만약 제가 저도 모르게 '이 친구는 돈도 많이 벌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데, 나는 뭐하는 거지? 우리집은..' 이런 나에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바로 차단합니다. 제가 저도 모르게라고 한것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매우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면 우리는 더 부족해 보이는 내 모습을 확인하고 우울해지거나, 또는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상대방의 좋은 집에 흠을 찾아내려 하게 됩니다. 이 두가지 모두가 우리가 흔히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질투는 상대방의 좋은 점을 좋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나와는 연결시키기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의 비교로 다음 생각이 이어지기 때문에 나와 연결시키지 않는 것에는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냥 보통의 사람인 우리는 그 사람과 비교를 해서 내가 뭔가 못나보인다라는 생각으로는 어떠한 건강한 감정도 들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연습을 계속 하였더니 마치 뇌회로가 바뀐 듯이 다른 사람의 좋은 것을 보았을 때 이제는 그것을 '나'의 결핍으로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즉, 나에 대한 존엄성을 잃지 않으니 상대방의 좋은 점에 진심으로 같이 좋아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