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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Oct 02. 2023

일의 기쁨과 슬픔_장류진

모든 직장인을 위해,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나요?




 <일의 기쁨과 슬픔> 제목을 읽고 일의 기쁨..? 찾기 쉬울까? 하는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런 내용은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네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최근 읽었던 책 <위치스 딜리버리>의 작가의 말에서 '장류진교'라는 말이 나와서 그게 대체 뭘까 궁금했는데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다리를 그렇게 부르신 듯하다. 그쪽을 갈 일이 생긴다면 그 다리가 어딘지, 그 위에서 보는 하늘은 어떤지 한 번쯤 가보고 싶다.  







1. 이야기

 <잘 살겠습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입사동기 빛나언니(aka. 총무과 라푼젤, 전체회신녀)에게 청첩장을 주며 생기는 일.

기본적인 기브엔 테이크의 법칙을 모르는 눈치 없고 그저 해맑은 빛나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하지만, 결국은 그녀가 잘 살기를 바라는 주인공의 복합적인 마음.


<일의 기쁨과 슬픔>

 위치기반 중고거래 어플 우동마켓에 하루에 백개씩 뜯지도 않은 새 상품을 거래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사장은 그를 어뷰저로 봐야 한다며 주인공에게 현장에서 거래를 하며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린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회장의 갑질로 인해 1년 동안 월급을 상품권으로 지급받게 되고, 그 상품권을 처리하기 위해 우동마켓을 활용하고 있던 것.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나요?'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능력도 있고 외모도 잘생긴 30대 남성 지훈 씨. 그는 당시 서로 애인이 있었지만 직장동료 지유씨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그저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으나, 지유씨가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며 그저 짝사랑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한 지유씨. 그는 오랜만에 지유씨와 연락이 닿자 기회라고 여기며 무작정 그녀를 보러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 


<다소 낮음>

 밴드활동을 하고 있는 주인공. 어느 날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사는 집에서 아버지가 준 냉장고를 보며 짧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 노래를 들은 여자친구가 이건 분명 뜰 것이라며 서둘러 영상을 찍어 올린다. 여자친구의 말처럼 그 영상은 급격히 조회수가 늘고 꽤나 유명한 회사에서 음원을 내자며 러브콜도 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음악이란 하나의 곡만 담긴 앨범이 아닌 유기적으로 연결된 여러 곡이 담긴 앨범으로 존재해야 한다며 거절한다. 결국 그 영상의 인기가 식을 때까지 끝내 이득을 보지 못한 채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도움의 손길>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집 청소를 위해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르면서 생긴 일. 주인공은 도우미 아주머니들 중 가장 깔끔하게 청소를 잘하시는 분을 선택하였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그녀를 새댁이라 부르며 그녀의 집안일에 하나 둘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 그에 불편감을 느끼지만 어르신에게는 그것이 별 의미 없는 안부인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집안일마저 예전처럼 제대로 되지 않는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처음 정규직으로 출근하면서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


<새벽의 방문자들>

 포털사이트에서 댓글을 모니터링하고 규정에 어긋나는 댓글을 삭제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 그녀는 오피스텔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녀가 지우는 댓글들 중 대부분은 성매매와 관련된 댓글들. 그녀는 퇴근해 집에 들어가 불을 켜면 사라지지만 분명 어둠 속에 숨어서 존재하는 바퀴벌레들을 보며 자신이 지우는 댓글들도 이 바퀴벌레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어떤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 앞에서 계속 서성인다. 그녀는 그 사건 이후 며칠간 공포와 불안에 떨며 지내는데,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 잊힐 즈음 같은 일이 반복된다.


<탐페레 공항>

  다큐멘터리 PD가 꿈인 주인공. 남들도 모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스펙이 될만한 경험을 쌓기 위해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아일랜드를 가기 전 경유지로 잠시 들른 핀란드에서 한 노인을 만나 비행기를 대기하는 4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한국에 돌아온 주인공은 노인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답장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노인이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답장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녀는 그토록 꿈꾸던 다큐멘터리 PD에 대한 도전도 잠시 접어두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여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고 현실과 타협한 채로 살아간다.

 



2. 생각하기

 현실에서의 우리들의 모습.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 같은 인물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켜야 할 기브엔 테이크, 꿈만 좇는지 현실과 타협하는지, 자녀를 낳을 것인지 안 낳을 것인지, 회사에서의 부조리 등 이 책에서는 평범한 2030 직장인의 삶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의 끝에 삽입된 해설에서 각각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주제, 그리고 해설이라는 말에 걸맞게 숨겨진 사회적인 메시지들을 잘 설명해 준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꼭 해설 부분을 찬찬히 읽어보기 바란다. 나는 그만큼 글을 잘 쓰지도 못할뿐더러 이야기를 분석하기보다 즐기며 읽은 그저 한 명의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 위주로 글을 써 보겠다.


 사회생활을 조금이나마 해보며 느낀 것은, 사람은 정말 다양하고 그래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작가님이 그런 사람을 너무 잘 묘사해서 몇 작품은 계속 '하...' 하고 한숨을 내쉬며 읽었다. 첫 작품인 <잘 살겠습니다>에서의 빛나언니도, <다소 낮음>의 주인공과 <도움의 손길>에서 아주머니도 그랬다. 여기서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를 뺀 이유는 사실 제일 읽기 힘들었지만 마지막에 통쾌한 사이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과 빛나언니를 비교해 보자면 나는 99% 주인공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빛나언니 같은 사람을 만나면 항상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또 마냥 미워하지도 못한다. 읽으면서 공감을 하기도 했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자비가 부족한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 주변에 꼭 그런 사람 한 명쯤 있지 않은가? 너무 순수하고 악의는 없지만 불편한 사람. 마냥 미워하지는 못하겠지만 화도 나고 가끔은 안쓰럽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


 <도움의 손길>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아이를 그랜드피아노에 비유한다. 엄청나게 커다랗고 들이는 순간 그것으로 인해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과 엄청난 기쁨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삶의 주인이 바뀌는 주객전도가 일어날 것이며 그 그랜드피아노를 놓을 곳이 없는데 놓게 되면 피아노를 위한 공간을 피해 좁은 틈사이를 비집고 지나다니며 살아야 한다고. 그런 현실 속에서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이 부분은 요즘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느끼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걸 그랜드피아노에 비유해 설명한 것이 꽤나 인상 깊었다.


 그리고 조금 성격이 달랐던 <새벽의 방문자들> 혼자 사는 여성들이라면 이 글은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지우는 댓글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했다. 이전에는 그랜드피아노, 이번에는 바퀴벌레. 작가님이 이런 표현방식을 좋아하시는 건지 모르겠으나 나는 좋았다.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이 깨끗한 문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만큼, 그들 역시 제약을 피하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을 고안해 내며(글자 사이에 숫자를 집어넣는 등) 노력하기 때문에 결국은 제자리걸음이라는 말이 매우 현실적이었다. 분노하다가도 힘이 빠졌다.


 전체적으로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이 너무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잘 살겠습니다>에서 주인공은 남편에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현실이고 모두의 삶이기에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또 이런 차가운 현실 속에서 하나의 판타지 같은 예쁜 추억 하나만 있어도 삶이 조금은 더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작품인 <탐페레 공항>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진 채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다소 낮음>에서의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려다 결국 주변의 모두가 떠나 혼자 남은 주인공과 <탐페레 공항> 속 현실을 직시한 채 적당한 타협을 하며 안정을 얻은 주인공. 처음 읽을 때는 앞의 작품 속 주인공이 안쓰럽기보다는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져서(전기요금이 연체됐으면 그 냉장고 문부터 닫아..) 힘들었지만 끝까지 읽고 보니 작품 간의 대비감이 느껴져 좋았다.


 순서로는 두 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었지만 이 책의 표제작이니 만큼 이 작품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일의 기쁨과 슬픔>. 겉으로는 깨어있는 척 하지만 실상은 갑질도 서슴지 않는 소위 말하는 꼰대 사장밑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겪는 일련의 일들에 화도 나고 어이없었지만 그것이 결국 현실이라 생각하니 별 특별할 것도 없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게 체념하기보다는 한 번 울어버리고 다시 털고 일어나 이런저런 방법으로 또 하루를 헤쳐나가는 그들이 멋있었다. 그렇게 그들을 응원하게 되고, 그 응원이 결국 다시 나를 위한 응원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 괜히 뭉클했다. 일의 슬픔 속에서 그저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각자의 방식을 터득한다는 점이, 기쁨을 꼭 하나쯤은 찾아낸다는 점이 별다른 위로의 말이 없더라도 그 자체가 위로였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나요?' 사실 나는 1년에 한 번쯤 일터에서 몰래 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지 궁금하다.





3. 물음표

 오늘은 책 속에 나왔던 질문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일의 기쁨과 슬픔>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나요?
 <탐페레 공항>
인생에서 가장 후회했던 경험이 있나요?












 나는 언니의 프로필 사진을 볼 때마다 대체 왜 저렇게 하지, 하고 생각했다. 정말 왜 저렇게 할까.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잘 살겠습니다>
- "사무실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아버지는 장우를 통해서 당신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정의한 행복의 방식과 장우의 방식이 달랐다. <다소 낮음>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도움의 손길>
- 이쪽과 저쪽이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므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 여자는 자신이 이 방에서 함께 서식하고 있는 바퀴벌레들 중에 딱 이 두 마리만큼의 성인광고를 지우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제일 약하고 작은놈으로. <새벽의 방문자들>
 애써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 어딘가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고, 떼어내도 끈적이며 남아 있는, 날 불편하게 만드는 그것. <탐페레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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