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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Feb 27. 2024

과탄산소다의 비밀

하루 종일 커피와 홍차를 입에 물고 살다 보니 내가 가진 컵은 늘 까맣게 착색되어 얼룩 얼룩하다. 처음에는 저렴한 도자기라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유명한 브랜드의 컵을 비싸게 주고 샀는데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비싼 게 좋은 게 아니란 말인가? 그래, 도자기는 기공이 있어서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매끈한 유리컵을 사자. 반질반질하고 투명한 유리컵이 한 번도 닦은 적 없는 우리 집 베란다 창문처럼 뿌옇게 착색되는 것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쯤 생각했다. 아, 컵은 소모품이구나. 쓰다가 버리는 것이구나.


첫 번째 깨달음은, 대학원 룸메이트에게 유리컵을 빌려주었을 때 찾아왔다. 내가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던 얼룩덜룩한 컵이, 깨끗하게 마치 새로 산 컵처럼 반짝이며 돌아왔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수세미로 닦았는데? 반신반의하며 평소보다 힘을 주어 얼룩 한 조각을 빡빡 긁어내듯 문질렀다. 그랬더니 얼룩이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게 힘으로 하는 거였구나. 깨달음은 여기까지. 얼룩 한 조각 벗기는데 이 정도 힘이 필요하다면 컵 전체를 닦으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필요 이상의 힘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 소위 천연세제 3 총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트렌드에 뒤질 수 없으니 나도 구매했다. 베이킹 소다와 구연산이 보골 보골 거품을 만들며 찌든 때를 쉽게 없애주는 것은 참 경이로웠다. 엄마, 이런 거 알아? 잘난 척하며 부모님 집의 가스레인지를 닦아주겠다고 들고 갔는데, 우리 집보다 오랜 기간 동안 눌어붙은 탓인지 생각만큼 잘 닦이지 않아 머쓱했다. 과탄산소다는 세탁세제 대신으로 사용했는데, 어느 날 보니 정말 신묘하게도 옷의 찌든 때가 사라져 있었다. 제일 좋은 것은, 세제를 사용할 때는 세탁이 끝난 후에도 거품이 남아 있어 늘 추가로 헹굼을 여러 번 돌려야만 했는데, 이제 그럴 일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게 천연세제 3 총사 중 최애는 과탄산소다가 되었고, 우리 집에는 늘 과탄산소다가 있었다.


어느 날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 스타벅스 직원이 올린 글을 보았다. 스타벅스에서 컵을 씻을 때 약품을 사용하는데, 그게 과탄산소다라는 것이다. 아니, 우리 집에 늘 있는, 그 과탄산소다? 한번 해보지 뭐. 아침에 출근할 때 컵에 물을 받아놓고 과탄산소다 한 숟가락을 풀어 넣었다. 퇴근 후 뿌연 물을 따라내니, 정말로 컵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심지어 뽀득뽀득하기까지 했다. 이게 된다고? 이렇게 쉽다고?


수명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버려졌던 과거의 내 컵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불현듯 의혹이 피어오른다. 과탄산소다의 비밀을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지?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데 설마 나만 몰랐던 것인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면 집안의 필수품으로 과탄산소다가 있어야 할 것인데, 부모님 집에도 없고 내가 처음 독립할 당시 엄마가 사준 품목에도 과탄산소다는 없었다. 그렇다면 소수의 사람만이 이 지식을 숨긴 채 홀로 향유했단 말인가?


Sodium percarbonate was first prepared in 1899 by Ukrainian chemist Sebastian Moiseevich Tanatar
(7 October 1849 – 30 November 1917).


해마다 여름이 되면 온라인에는 인류 구원자, 윌리스 캐리어의 사진과 경배글이 도배된다. 이제 여기에 최초로 과탄산소다를 제조한 세바스티안 나타나도 추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화학자 여러분 존경합니다.



주)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은 먹어도 안전하지만, 과탄산소다는 독성이 있어 이러저러 위험성이 있다고 한다. 먹으면 안 되니 식기는 반듯이 깨끗이 헹구어야 하고, 맨손으로 세척하면 손이 거칠어진다고. 스테인리스에 사용하면 스테인리스의 녹방지 효과를 감소시킨다고 한다. 국제화학물질 안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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