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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Mar 14. 2024

아무튼 피아노 연주... 베토벤 <템페스트> 3악장

얼마 전 첼로 하는 친구가 슈만의 환타지슈티케 op73 피아노 반주가 가능한지 물어보았는데 나는 나의 피아노 실력의 수준을 감안하지 못한 채... 슈만에 무한히 이끌려 일단 해보겠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주 목요일에 첫 연습을 하고, 오늘 두 번째로 만났다.

나의 템포대로 1악장은 어찌어찌해보겠는데, 메트로놈을 켜놓고 칼박자대로 하려니 템포를 못 따라가고 손가락이 꼬이는 건 둘째 치고, 음악이 어찌나 기계적이고 재미 없어지던지...


그래서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함께 연주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혼자 치는 피아노는 앞으로 정해진 악보 무시하고 내 맘대로 치기로...

악보대로 하는 연주들은 무수히 많을테니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나는 그냥 정석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음악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원래도 그러긴 했지만 공개적으로 연주한다고 생각하면 비판받을 부분에 대해 늘 스스로 기가 죽어 있었으니...)

평생 동안 피아노 레슨을 2개월씩 3번, 총 6개월밖에 받지 못했는데...(중학교 때 2개월, 대학교 때 2개월, 대학교 졸업 후 2개월) 매번 2개월을 넘기지 못했던 건 끈기가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이제야 생각해 보니 교육되고 주입되는 음악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던 것과는 별개로 금방 레슨에는 흥미를 잃었던 것 같고... 질렸던 것 같고

그래서 오히려, 정형적인 음악 교육에 길들여지지 않고, 억압되지 않은 나만의 자유로운 음악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며 그 장점을 살려 그냥 누가 뭐라 하던 내 연주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전공을 하고 프로 연주자가 될 것도 아닌데 내 맘대로 어떻게 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제 좀 당당해져야겠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형식에 굴하지 않으려 했던 마음 그대로, 음악에서도 그렇게 당당해지기로... 

 

집에 디지털 피아노로 치다가 몇십 년 만에 진짜 피아노를 두들겨보게 된 것 같다.

베토벤의 템페스트 3악장을 잠깐 쳐보다가 갑자기 녹음해 보았는데, 악보도 없어 외워서 바로 연습한 그대로, 틀린 그대로 유튜브에 첫 게시물로 올려보았다. 완벽하게 연습해서 영상을 올리겠다는 야심을 가지면 아마 평생 올리지 못할 듯하여... 이제 몰래 숨어 혼자 치고 말 것이 아니라... 기록의 차원에서도... 틀리고 어설프더라도... 당당하게 올려보려고 한다. 피아노 연습 동기부여 차원에서라도...  슈만 반주를 곧 포기하게 될 것 같아 언제까지 갈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목요일 피아노를 만나러 갈 때마다 한 곡씩 녹음해보는 것을 목표로 하여... 


변명처럼... 북튜버로 유명한 김겨울 작가가 <아무튼 피아노>라는 책에서 프랑수아 누델만, <건반 위의 철학자>를 인용해 적은 글을 아래 발췌해본다.


아마추어리즘은 어설프게 연주하는 것을 일부러 의도한 미학인 양 포장하지 않는다. 미숙한 연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도 충분히 예술로 정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의도된 미숙함인지 아니면 진짜로 미숙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경계를 넘나든다. (건반 위의 철학자/프랑수아 누델만)


우리의 느릿느릿 한 쇼팽도 예술이며 그 안에는 아마추어의 미학이 있다. 아마추어의 미학이란 유창한 곡 해석을 의도치 않게 배제하는, 악기와 곡에 대한 애정으로 더듬더듬 이어지는 불완전성의 미학이다. 아마추어가 연주하는 곡은 매끄럽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틀리고 더듬거리기 때문에 아름답다. 역설적으로 그 더듬거림이 악기와 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내 연주를 좋아했던 팬들은 단순히 내 연주가 근사해서 좋아했던 게 아니다. 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한 것일 테다. 어설픈 연주가 그 자체로 하나의 증명이 된 것이다. 음악에 대한 사랑, 피아노에 대한 사랑, 그것을 지속하려는 의지. 그러므로 내가 소리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추어의 사랑, 지극한 사랑의 덕이다. 나는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피아노를 친다. 마음을 놓고 성실하게 친다. 뚱땅뚱땅 쳐도 소리는 나고, 그거면 된다. (아무튼 피아노 / 김겨울)


 

https://youtu.be/zWyOVXyzVmU?si=67AFa6XxpUom_j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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