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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11. 2023

김치를 못 먹는 사람이, 한국에서 산다는 건

1. 편식의 역사: 유치원의 급식지도


10대의 나는, 스스로가 키우기 편했던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내 딴엔 그 흔한 사춘기도 없이, 큰 반항도 없이, 그냥 하라면 열심히 공부하고 나름 모난 데 없이 컸으니까.


그런데 다 커서 돌이켜보니, 그리 쉬운 애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 이유는 기억도 안 나는 아기일 때부터 지금까지 편식의 역사가 장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편식에 대한 최초의 기억.


그건 유치원 담임 선생님의 급식지도였다.




당시 우리 유치원은 급식판을 도시락 형태로 들고 다녔다. 도시락 밀폐용기라고 해야 하나?

 판을 집에서 세척해서, 유치원 자체제작 코끼리 가방에 넣고 가면 점심시간이 되었을  꺼내 들고 급식을 배식받았다.


어릴 적만 하더라도, 알레르기 같은 특이사항이 있는 게 아니라면 모든 급식의 음식들을 골고루 먹고 되도록은 다 먹는 게 정석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가리는 반찬 없이 모든 종류의 반찬을 먹기는 했어야 한다.

내 기억으론 소량의 음식물이 남았을 때만 급식 잔반통에 버리는 게 허락되었다.

그리고, 난 급식에 매일같이 나오는 김치를 먹지 못했다.

그러니, 급식지도를 하는 선생님의 눈엔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한 두 번 정도는 모르셨겠지만 매번 김치를 많이 남겨오니, 블랙리스트가 되어버린 것.

그래서, 그때부턴 전담마크(?)를 받았다. 김치를 먹지 않고, 잔반을 버리러 오면 다시 빠꾸 당하는 것이다…!

김치를 싫어하는 어린아이가 이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은 뭐였을까?


어린 마음에 몇 가지를 생각했다.


1. 김치를 먹고 검사받고, 남은 음식물을 버린다.

2. 선생님한테 울며불며 떼쓴다.

3. 몰래 남은 급식을 집에 통째로 가져가 버린다(…!)


물론, 소심한 내가 택한 건 3번 째였다.

아이들이 꽤 많은 인원이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바쁜 와중에 급식판의 뚜껑을 그대로 덮어 집으로 가져간다면 선생님은 알 턱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만행을 처음 알게 된 건, 엄마였다.


김치를 먹지 않아, 급식 잔반을 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잔반을 집에 챙겨 온 나는.

엄마가 가방을 만지는 순간 들켰다.


급식판은 뚜껑은 있었으나, 그게 완전히 밀폐가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남아있던 급식판의 국물이 가방 안에서 줄줄 샜던 것이다.

그래서 가방만 몇 번을 빨았던지.

(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참 말 안 듣는 금쪽이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급식에서 김치를 억지로 먹이는 바람에 내 딴에는 김치를 씹지도 않고, 거의 삼키다시피 해서 먹고 크게 배앓이를 한 뒤 외할머니의 만류로 드디어 유치원의 김치 급식 지도에서도 벗어났다는 이야기.(내가 김치의 매운 고춧가루 때문에 배앓이를 해서, 엄마가 유치원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절. 한국 공교육에서 급식 지도, 특히 편식에 대한 급식지도는 유치원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얼마 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의 급식지도 시대가 열렸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김치를 안 먹는다고 하면 밥을 몇 끼를 굶겨서라도 김치를 먹게 만드는 식사 예절 교육이 기본이었던 터라. 김치 싫어하는 아이는 급식지도를 피해 가기 어려웠다. 그 당시 해산물을 못 먹을 순 있지만, 김치를 못 먹는다는 사실은 거의 죄악(?)처럼 느껴졌다.


요즘이야 왼손잡이들을 존중하고, 오히려 천재라면서 반겨주지만. 이전에 왼손잡이 학생들에게 오른손잡이로 고치라고 강박적으로 가르쳤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김치는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는 내게 숟가락에 밑장 깔기(김치 조각을 숟가락 맨 아래에 깔아놓고, 위에 흰쌀밥, 그리고 위에 장조림 혹은 김을 얹는 기술)를 시전 했다. 이렇게라도 몰래 김치를 먹이려고 했지만, 어렸을 때의 난 예리했다. 낌새를 눈치채고 항상 주춤거리면서 그 숟가락을 받아먹다가 김치만 뱉어냈으니까….(지금 생각해 보니, 육아 난이도 최상이었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이런 초등학교 저학년 급식지도를 겪으며, 내가 편식을 줄이게 되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꼼수가 더 늘었을 뿐….


이전엔 김치를 먹고 검사받지 않으면, 잔반통에 국물을 비롯한 음식물을 버리게 하지 못해서 급식판의 뚜껑을 그대로 덮어 집에 가져가던 유치원생은.

초등학생이 되어서 새롭게 국면을 맞이한 급식지도에, 새로운 융통성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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