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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군 Dec 14. 2023

[단편소설] 그녀의 나방


  머저리야 머저리. 아니 버러지가 낫군. 아니면 나방. 그래 나방이 좋겠어.

  그녀는 짜장면을 먹으며 중얼거렸다. 검은 짜장이 그릇 끝에 잔뜩 매달려 있었다.

  누구 말이야?

  나 인사팀에 찌른 미친년 말이야.

  확실하지도 않다며. 그런데 왜 나방이야?

  나방이 좀 그렇잖아. 기어 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한테 달려들잖아. 징그럽고.  

  지연의 회사 동료는 어느새 곤충이 되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너무 좋다고 새 경력사원을 칭찬했었다. 나방은 불빛을 향해 돌진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 봤자 또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그녀는 말꼬투리를 잡느냐고 입꼬리를 올리며 투덜거릴게 뻔했다.

  어린 시절 외갓집 문지방에는 밤이 되면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벌레들이 가득했다. 문을 실수로 열어 놓으면 벌레들이 방에 들어와 탁탁 소리를 내며 노란 백열등에 부딪혔다. 특히 나방들은 크기가 커서 어린 우리들에게는 두려운 대상이었다. 긴 더듬이와 흉측해 보이는 눈, 그리고 고동색 줄무늬는 공포스러웠다. 나비처럼 예쁜 나방도 있었는데,  시골 동네 아이들은 날개에 독이 있어서 나방을 만진 후 눈을 비비면 실명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와 동생들은 방안에 들어온 나방을 보면 더 소스라쳤다.

  지연을 우연처럼 다시 만났다. 노란색 마스크 위로 눈을 보고 신기하게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강남역 8번 출구 아래에서 그녀도 나를 알아봤다. 지연은 외마디 비명을 지른 후 억지로 내 손을 잡고 손뼉을 쳤다. 주변을 둘러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한 톤 높인 라 정도의 음으로 말했다.

  오빠를 강남에서 다 보네.

  어떻게 서로를 알아봤을까? 그녀는 매가리 없이 걷는 게 꼭 오빠 같았다고 했다.


  4년 전 우리는 신촌에서 자주 봤다. 3년 정도 일을 하니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뭔가를 하긴 좀 그렇고, 회사 일도 재미는 없고, 그때 시나리오 학원을 우연히 발견했다. 대학 때 친구들과 재미 삼아했던 영화 동호회를 생각하며 시나리오 학원을 신청했다. 그곳에서 지연을 만났다. 제목만 들어도 졸릴 것 같은 예술영화를 좋아하거나 현장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 수강생이었다. 감독과 작가는 아니지만, 영화라면 목숨을 걸 만큼 시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지연은 조금 도도했다.

  저는 영어전공인데요. 나중에 모델이나 배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제가 성공해도 여러분들에게는 개런티 없이 출연을 해 드릴게요.

  그녀의 시놉시스는 독특했다. 사물이 말을 하거나, 시공간 개념 없이 자유롭게 주인공이 등장했다.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면 그녀는 눈썹을 치켜들고 목소리 톤을 높여 반복해 말했다.

  영화적 허용입니다. 허용.


  지연의 부전공이 인류사회학이고 멘사 회원인 건 한 달 뒤 술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와 친해진 것은 노래방에서였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노래방 앞이지만) 2차 후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며 집에 가기 위해 서 있었다. 잠시 후 노래방 계단에서 내려온 그녀는 시끄럽다는 손짓을 하며 내게 담배 한 대를 빌렸다. 간판 네온사인이 반사돼 골목이 빨갛게 수놓아졌다. 그녀와 이야기하며 노래방을 싫어하고 서로 왕가위 감독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 하다 왕가위 이야기가 나왔는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시나리오 학원에 모인 사람들이기에 좀 더 있어 보이고 싶어, 나는 자기소개 시간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왕가위 감독이 아닌 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라고 말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를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마도 프랑스의 발음하기 힘든 감독이었던 것만) 지연은 홍콩을 찾아갈 만큼 왕가위 감독의 오래된 팬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이야기는 홍콩을 떠나 일본과 유럽을 거쳐 편의점 구석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새벽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유대감은 기대만큼 오래가진 못했다. 한 달 뒤 그녀는 수업을 몇 번 빠지더니, 후반에 가서는 나타나질 않았다. 카톡을 보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 역시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수업 막바지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일에 치여 그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다 강남 한복판에서 다시 만났다.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씩 밥을 먹었는데 지연은 내 안부보다 그녀 일상을 쉴 새 없이 쏟아내기에 바빴다. 4년 공백을 점심 한 시간에 찍어내기엔 부족했다. 지연은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작년에 통역회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정직원이 되었는데 그 회사에서 가장 빠른 정직원 전환이었다. 그녀 밑으로 계약직 직원들이 들어왔는데 그녀 말에 의하면 통역하는 친구들은 프리랜서를 오래 해 회사 생활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말하는 사이 늦게 탕수육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으며 말했다.

  내가 선배니까,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했지. 보통 다 그러잖아.

  그중 한 명이 지연을 잘 따랐다고 했다. 나는 탕수육을 찍어서 먹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틈을 주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부었다. 얼굴도 귀엽고 옷도 예쁘게 입어서 더 애정이 갔다고 했다. 후배 업무가 많으면 나눠서 진행했다. 사이가 틀어진 건 자기가 너무 친절해서라고 그녀는 말했다. 부장의 업무 스타일을 잘 아는 지연은 번역 방식과 보고서 정리방법을 알려줬지만, 후배는 수정하지 않고 보고서를 정리해 부장에게 보냈다. 그녀는 그런 일이 반복되자 사무실 밖으로 후배를 불렀다. 회사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후배를 생각한 지연의 배려였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후배는 커피잔만 쳐다봤다. 선배가 말하는데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요즘 애들이 일반적이진 않지.

  지연은 친절했다. 후배가 보낸 번역과 보고서에 빨간펜으로 수정해 답장했다. 이런 선배는 어느 회사에도 없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빨간펜 선생 노릇을 자처한 지 한 달 뒤 인사팀에 투서 한 장 날아왔다. 투서 이야기를 하면서 젓가락을 잡고 허공을 찌르는 그녀의 소매에 김치국물이 빨갛게 묻어 있었다. 지연이 전한 투서 내용은 이러했다.

  번역 2팀 김지연 주임이 친절한 척 도와주면서 업무를 뺏고 있으며 후배들에게 꼰대 짓을 함.


  적당히 그녀의 말에 대꾸하며 커피를 마시러 식당을 나왔다. 감기 기운으로 마스크를 한 그녀는 갑자기 사레가 들렸는지 마스크를 벗고 기침을 했다.

  그년 때문에 감기가 안 나네. 나방 같은 년. 은혜를 모르는 것.

  지연은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녀가 나방 욕을 할 때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마르코 형이었다. 퇴사 후 2년 만이었다. 그의 뾰족한 콧날과 잘 정리된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을 한 번 먹기로 하고 헤어지자 지연이 내 팔을 끌어당기며 물었다.

  누구야? 누구?

  같이 일했던 형이야. 동양인처럼 보이지만 국적이 브라질이야.

  오빠! 볼 때 나도 불러주면 안 돼?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초면인데?

  브라질이면 포르투갈어 쓰지? 나 포르투갈어에 관심 많다고. 호날두도 좋아하고.

  저 형 유부남이야.

  뭐 어때. 그냥 밥만, 밥만 먹는 건데……. 오빠는 꼭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지연의 눈썹이 더 짙어 보였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걸으며 나방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커피를 테이크아웃 한 후 강남대로 넓은 건널목 아래에서 그녀를 보내줬다. 신호등 파란 불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하늘은 봄도 아닌데 황사가 온 듯 뿌옇게 보였고 눈구석을 비비자, 눈이 뻑뻑하게 느껴졌다. 사무실에 가기 전 약국에서 인공눈물을 잊지 말고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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