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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봉수 Jul 22. 2024

<단편소설>늑대거미를 토하는 여자(2)

자살

K는 40대이자, 25년 차의 경찰관이다.

경찰관은 직업 특성상 다양한 사람을 접하고, 그들의 생로병사에도 관심이 많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가정폭력 사건이 가족이나 부부간의 문제로 한정되었으나, 최근에는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주간 근무 날이었다.

112로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고, k는 마우스를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컴퓨터 모니터의 신고 내용을 유심히 읽어보았다.

어제 낮에도 112 신고가 접수된 곳이라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6층 아파트였다.

한숨이 푹 푹 나왔다.

k는 무거운 외근조끼를 입고 6층을 올라갈려니 짜증이 약간 밀려왔다.

이미 아파트 출입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집 안을 힐끔 들여다보니 한마디로 난장판이었고, K 나이 또래의 중년 여자는 방바닥에 엉덩이를 약간 들고 엎드려 있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냥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만지면서 말했다.

"별것도 아닌데, 계속 경찰관을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내가 112에 신고를 한 것 같은데, 저도 죽을 지경입니다."

함께 출동한 동료 경찰관이 여자에게 말을 걸어 보았으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아내에게 이야기해 보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대신 물음에 답하죠."

K는 남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신고를 했나요?"

"112 신고는 제가 아니라 아내가 했습니다.

아내가 원래 알코올 의존증과 우울증이 있는데 최근 들어 증세가 악화돼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죽겠다면서 신고를 했을 것입니다."

K는 112 신고 내용을 다시 한번 더 유심히 봤다.

"남편도 꼴 보기 싫고, 세상 살기도 싫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으니 경찰서에서 나를 잡아가라."

남자는 자신이 아내를 진정시킬 테니, 경찰관은 그냥 가라고 하였다.

곁눈으로 집 안 내부를 유심히 살펴봐도 특이한 상황이나 가정폭력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K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습관적으로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보게 되는데, 그 집에도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결혼 초기에 남자와 여자가 다정하게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리고 검정 베레모를 쓴 화려한 군복을 입은 남자의 작은 사진이 텔레비전 옆에 있었다.

현역병으로 군대를 갔다 온 K가 보기에 남자는 일반병이 아니라 공수부대에서 군 복무를 한 것 같았다.

현재의 남자는 직업군인은 아닌 것 같고 평범한 직장인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약 8일 후 주간 근무 때 여자는 또 112에 신고를 했고, 우리는 현장으로 출동했다.

상황은 예전과 비슷했으며,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여자는 천장을 보고 방바닥에 누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고 있었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신고가 들어와 현장에 출동 했지만, 특별한 조치를 해야 할 긴박한 일은 없었기에 남자에게 부인을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고, 남자도 그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또 8일 후 주간 근무 때 같은 장소에서 112 신고가 접수됐는데, 이번에는 여자가 아니고 남자의 목소리였다.

남자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집에 와보니 마누라가 죽어 있었어요. 자살을 한 것 같아요."

변사사건이라 형사팀과 함께 남자의 아파트로 출동했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남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 간단하게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서 묵념을 한 뒤, 사건 처리를 위해 여자의 모습을 촬영했다.

여자는 목을 매어 죽어 있었다.

여자의 시신을 방바닥에 눕히고는 검시관이 올 때까지 하얀 천으로 덮어두었다.

K는 남자에게 다가가 여자의 인적 사항과 평소 건강 상태, 처음 본 현장 상황 등을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K의 질문에 남자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연신 담배를 피우며 그녀의 삶을 상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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