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남자의 이름은 김혁준이고, 여자의 이름은 박숙향이었다.
여자의 고향은 광주이고, 남자의 고향은 경남 사천시(구 삼천포)였다.
박숙향의 집은 전남도청 주변의 단층 주택이다. 가족관계는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다섯 살 때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엄마(김 씨) 그리고 두 살 많은 오빠와 세 명뿐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19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 항쟁 운동은 많은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남겼으며, 평범한 시민이었던 박숙향의 가족도 예외 없이 깊은 상처를 받아 주저앉고 말았다.
당시 그녀는 고1이었고, 그녀의 오빠는 고3이었다.
민주화 열망을 원하던 광주시민에게 군사정부의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은 이미 극한 상황까지 갔으며, 시민군은 전남도청에서 진압군에 맞서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박성수는 여동생인 숙향에게 말했다.
"오빠는 오늘 전남도청으로 가서 시민군에 합류해 끝까지 싸울 거다."
"오빠! 뭐라고, 어디로 간다고?"
"엄마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아라."
"지금 밖에는 군인들이 총을 쏘고 난리인데, 그냥 집에 있어라."
"집에 숨어 있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가서 싸워야 한다."
박성수는 만류하는 여동생을 뒤로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박성수가 전남도청 주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도청 주변에는 진압군과 탱크들이 쫙 깔려 있었다.
박숙향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오빠를 찾으러 전남도청 쪽으로 향했다.
도청 입구와 주변 도로에는 검문소를 세우고 군인들이 외부인들은 통제하고 있었기에 박성수는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보고 있다가 정문을 지키는 늑대 눈을 닮은 군인에게 거짓말을 했다.
"도청 안에 저희 어머니가 계신데, 지금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를 만나러 들어가야 합니다."
박성수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시민군에 합류해 군인들과 싸우고 싶었다.
군인은 박성수에게 말했다.
"지금 전시 상황이라 상부의 허락 없이는 안에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다. 학생아! 그냥 집에 가라."
"우리 엄마가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박성수는 포기하지 않고 군인을 조르다가 군인이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도청 안으로 냅다 뛰었다.
군인은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야 학생아! 당장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발포한다. 빨리 돌아와라, 빨리!"
하지만 박성수는 못 들은 척 계속 뛰었다.
순간,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박성수는 등과 다리에 총을 맞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 모습을 오빠를 찾으러 왔던 박숙향이 근처에서 모두 보고 말았다.
그녀는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오빠를 보고 전남도청 시계탑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진압군은 탱크를 타고 굶주린 늑대거미처럼 도청 안으로 쳐들어갔다.
탱크는 오빠의 시체를 피하지도 않고 밟으며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오빠의 시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가 됐다.
박숙향은 오빠를 총으로 쏜 군인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당황한 군인은 군홧발로 그녀의 복부를 수회 걷어찼으며 그녀는 땅바닥에 나뒹굴어졌다.
그녀는 큰 충격에 빠져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교복을 입은 채 시계탑에 기대어 울고 있었다.
특전사 11공수 여단에 근무하고 있던 말년 병장 김혁준은 광주에서 일어난 데모 때문에 말년휴가도 취소된 채 전남도청 작전에 긴급하게 투입됐다.
군인인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그는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총을 쏘면서 전남도청 안으로 들어가 시민군을 진압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었지만, 부상당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걸어가다가 교복을 입은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도청 시계탑에 기대어 울고 있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이곳에 그대로 두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 줄 모르겠다 생각돼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김혁준과 박숙향의 인연은 여기서 시작됐다.
김혁준은 박숙향을 억지로 끌고 가다가 인근 파출소에 데려다주었다.
파출소에 데려다주면 경찰관이 부모를 찾아주던지, 아니면 부모가 파출소에 실종된 자식을 찾으러 올 것이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 후 그녀의 엄마 김 씨가 파출소에 왔다.
오자마자 그녀에게 물었다.
"성수도 집에 없던데, 빨리 찾으러 가자."
두 사람은 박성수를 찾기 위해서 전남도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박숙향은 오빠의 죽음을 알고 있었지만, 특별한 내색은 하지 않은 채 엄마와 함께 도청 쪽으로 향했다.
도청에는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가득했으며, 여기저기 시체가 널려 있었다.
얼마 후 김 씨는 탱크에 짓눌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신 한 구를 찾았고, 입고 있는 옷이며 신고 있던 신발을 보고 이내 아들인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김 씨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고, 그녀는 곁에서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
그날따라 광주에는 곡괭이 같은 굵고 붉은 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