뛸 수 있는 날까지

나이 듦 속에서도 계속 뛰는 법

by Pelex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뛰고, 또 그만두기까지.
작은 회사란 사장의 성격에 따라 들락날락 이 잦습니다.
까탈스러운 제 성격 탓일까요, 아니면 인연의 시한이 다한 걸까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저는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아직, 나는 뛸 수 있다는 것.


엊그제,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신문을 펼치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막상 갈 곳이 없습니다.
아침을 대충 먹고 휑하니 집을 나섭니다. 집에 있으면 마누라님의 잔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 선생이 드나드는 발걸음 소리도 거슬립니다.
그냥 나가는 겁니다.

전화가 걸려올 곳도 없습니다. 간혹 스팸전화라도 오면 반갑습니다.
다행히 동네 도서관이 있어, 신문 글자 한 자 놓칠세라 읽습니다.
세상이 떠드는 광우병 쇠고기 뉴스에도 마음은 무심합니다.
그저 어디든 취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
아직은, 더 뛸 수 있는데….

그리고 기회가 왔습니다.
많은 월급은 아니지만 다시 직장에 나가니, 이렇게 좋은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허둥지둥 출근하는 그 자체가 즐겁습니다.
사장 눈치가 보이지만, 아직 가능성이 보이니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이 자리에 오래 머물면 좋겠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진 않겠지요.

이따금 현직에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하면,
서둘러 전화를 끊는 기색이 느껴집니다. 문전박대 같은 차가움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화가 나기보다 너털웃음이 나옵니다.

우리가 앞으로 경제 활동을 얼마나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더 나이 들고, 아프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길어야 십여 년,.....
뒤돌아볼 시간도, 따져볼 여유도 없습니다.

죽으면 부의금 오만 원, 많아야 십만 원이면 끝입니다.
그러니 좀 더 만나고, 배려하고, 칭찬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 도우며, 뛸 수 있는 날까지 죽을 둥 살 둥 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멋있게, 혹은 추하게 살지 않는 비결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제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첩첩산중, 빙 둘러 꽉 막힌 산새가 단종의 한을 품은 듯 서려 있던 곳.
그 서기가 동강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듯한 마을에서,
다시 시작한 직장생활은 석 달 만에 끝났습니다.

아니, 마음으론 3년을 견딘 것 같습니다.
참으려 했고, 잘해보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추해지기 전에 떠나야 했습니다.

등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습니다.
떠나는 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수양이 덜 된 것도, 모든 게 변명이고 구차한 말일뿐.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데 돈보다 마음가짐, 한마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나는 다시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웠습니다.

뛸 수 있는 날까지, 나는 또 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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