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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이 Sep 09. 2023

남편 데리러 가는 길

신혼일기

이 세상에 당연한 건 단 하나도 없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부모님이 나를 아끼는 마음도 모두 당연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겐 오랜 학습에 의해, 자연스럽게 내 몸에서 '당연하다'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늦은 귀갓길엔 항상 아빠가 데리러 오신다는 것. 우리 아빠는 대학생 알바 때는 알바 장소로, 대학원 때는 막차시간에 맞춰 지하철 역으로, 회사 다닐 때는 회식 장소로 나를 데리러 오셨다. 그렇기에 나는 가족이 늦게 귀가하면 데리러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오빠, 오늘 회식 있다고 했지? 저번에 보니까 대리비가 3만 원이 넘던데, 내가 퇴근길에 오빠 회사 들러서 차 가지고 갈게. 회식 편하게 하고 와'

남편은 자차로 출퇴근하는데, 회식이 있다길래 남편 용돈을 아껴주고자 내가 차를 가져오려고 했다. 그때 남편의 한마디가 이어졌다.


'그런데 여보, 어차피 택시 기사님께 지불해야 하는 돈인데 여보가 데리러 오고 여보한테 택시비를 주면 더 좋지 않을까?'

'응?'

나는 당황함, 아니 어이없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냥 '여보가 회식 장소까지 데리러 와주면 좋겠어'가 아니고, 나를 택시처럼 부르고 택시비를 준다고? 아니 가족끼리 무슨 데리러 간다고 돈을 주고받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우리 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거를 내가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럼 돈 안 주면 안 가고, 주면 가고?


'아니, 오빠 어떻게 그런 생각이 가능한 거야? 진짜 궁금해서'

'그게 나 엊그제 친구들하고 놀았잖아. 그때 친구가 와이프한테 데리러 올 수 있냐고 했는데 와이프가 4만 원 주면 간다고 해서, 친구가 4만 원을 바로 입금하는 거야. 그리고 와이프가 데리러 왔지 뭐야. 그래서 나는 다 그러는 줄 알았어'

'아니, 그건 그쪽 집 사정이니까 뭐 내가 이해하고 말고 관심도 없고, 오빠 우리 집에서는 그런 거 없어.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이 집에 오기 힘든 상황이라면, 오빠가 파주에 있다고 해도 아니 부산에 있다고 해도 나는 가야 해. 돈 없이, 보상 없이. 왜냐고? 우린 가족이니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물론 당연한 건 아니야, 가족을 위해서 늦은 시간 멀리 픽업 가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위한 그 마음으로 가는 거지'


결혼

상대방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하지만 그 마음은 온전히 기쁨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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