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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이 Sep 12. 2023

요리 잘하는 새댁이고 싶었는데

신혼일기

'엄마, 나 오늘은 닭볶음탕 해줘!'

'엄마, 나 오늘 고기 먹고 싶었는데 생선찜이네...'

'엄마, 내일은 오징어볶음 먹고 싶어!'

부모님 그늘 안에서 살던 때, 그러니까 결혼 전, 엄마도 퇴근하시고 저녁 준비를 하시는데 마치 맡겨둔 듯이 저녁마다 먹고 싶은 메뉴를 말했다. 그리고 저녁마다 식탁 위에는 내가 주문한 메뉴들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졌다. 엄마는 뚝딱 하면 요리가 나오는 줄 알았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 덕분에 나에게도 요리 로망 같은 게 있었다. 그냥 술렁술렁 요리하는 것 같은데 맛있는 요리와 '말만 해 다 만들어 줄게' 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까지 다 닮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이 스팸을 먹고 싶다고 해도 '요즘 스팸 사이에다가 치즈 넣는 거 유행 알지? 그거 만들어줄게', 햄버거를 사 먹자고 해도 '감자튀김은 내가 해 줄게. 엇? 고구마 있는데 고구마스틱을 해줄까?', 냉동피자를 돌려 먹는다고 해도 '냉동식품은 또 이 재료들을 추가해서 먹으면 엄청 맛있어요. 토마토랑 야채랑 추가해서 먹자!' 이렇게 자체적으로 일을 벌여서 요리를 하곤 했다. 요리 앞에선 괜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주말 점심 오빠가 햄버거를 사 먹자고 해서, 그럼 내가 감자튀김은 직접 해주겠다며 햄버거만 포장해 오기로 했다. 감자튀김을 생각하다 문득 엄마가 지난 주말에 주신 고구마가 생각났다. 젊을 때(?) 많이 가던 '와라와라'라는 체인점 술집에서 주던 기본안주인 고구마스틱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오빠, 와라와라 고구마스틱 알지?'

'아, 알지 알지'

'오늘 내가 그거 해줄게! 엄마가 준 고구마도 있고!'

'그래? 그냥 감자튀김 사 먹자'

'아~ 왜~ 감자튀김 조금 주는데 비싸고, 만드는 건 재미도 있으니까 만들어 먹자!'


그렇게 호기롭게 고구마스틱을 만들겠다는 나는 우선 고구마를 들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고구마가 이렇게 칼질하기 힘든 식재료인지 몰랐다. 감자는 칼 한방에 그냥 반이 갈라지고, 채 썰기도 쉬워서 감자채 전을 많이 해 먹었는데, 왜? 고구마는? 이렇게 칼이 안 들어가지? 칼이 이상한가? 지금까지 본인의 임무를 잘 완수해 낸 칼을 탓하며, 더 날카로운 칼로 바꿔서 고구마를 잘라봤다. 그러나 똑같이 칼이 잘 안 들어갔다. 그래서 칼을 꽂고 위에서 칼을 툭툭- 치면서 고구마를 자르기 시작했다. TV를 보고 있는 오빠와 수다를 떨며 즐겁게 고구마를 자르는데... 갑자기... 고구마가 튕겨나갔다. 조그마한 고구마를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는 안 되는 칼질을 우겨가며 쓱싹- 쓱싹- 자르고 있었는데 고구마를 잡고 있던 손에서 고구마가 튕겨 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고구마를 썰어야 하는 칼이 내 손을 썰었다. 

'악!!!!'

'왜 왜 괜찮아?'

'아니,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너무...'

뚝- 뚝- 뚝-

피가 계속 떨어졌다. 다행인지 아닌지 전에 크게 손을 베인 적이 있어서 응급처치를 빠르게 이어갔다. 물에 손을 씻지 않고, 손을 심장보다 높게 들고, 온 힘 다해 지혈을 했다. 금세 휴지가 빨간색으로 물들어서 휴지를 바꾸고 또 바꾸었지만 피가 멈추지 않았다. 


'오빠, 더 세게 더 세게 눌러요'

'더 세게? 안 아파?'

'너무 아픈데 더 세게 눌러야 지혈이 될 것 같아'

점점 지혈이 되는 것 같아서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려고 하면, 또다시 피가 철철- 넘쳤다. 휴지를 빼고 슬쩍 보니 포를 뜨듯이... 내 살이 포 뜨는 것처럼... 포가 떠있어... 악!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겨우 피가 멈췄다.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해서 스토리를 얘기해 줬더니, 

'벌써 두 번째네. 요리한다고 손 크게 베인 거'

'그러네, 그래도 지난번에는 응급실까지 가서 꿰매기까지 했지 이번에는 뭐 양호하지'

'이번에 농사가 잘 안 되어서 고구마가 많이 작아, 그렇게 작은 고구마는 딱 손 베이기 좋아. 조심해야 해'

'아 원래 고구마가 잘 안 잘리는 거지?'

'응, 이제 요리한다고 오버하지 마'

'넵'


나도 우리 엄마처럼 말하는 대로 다 요리해 주고, 술렁술렁 요리했는데 10첩 반상이 차려지는 그런 와이프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 우리 집 칼 담당은 남편에게 맡겨야 할 것 같다.


결혼

내 삶이 편안했던 이유는 다 엄마의 보이지 않는 손과 발 덕분이었구나.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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