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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이 Sep 07. 2023

매우 효과적인 잔소리 퇴치법

신혼일기

인생은 역지사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생각이야 할 수 있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내가 다 이해해,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거짓말에 불과하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어찌 공감의 한마디로 내가 그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결혼하고 남편의 어깨에는 가장의 무게라는 보이지 않는 무게추가 추가된 것 같다. 가장의 무게는 뭘까? 회사에서 불편한 상황을 한번 더 참고, 하고 싶은 말을 한번 더 하지 않고, 회식에 참여하기 싫어도 참여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루종일 그 무게를 견디며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오늘은 회식까지 있다고 한다. 12시가 넘어서 회식이 끝난 남편이 귀가했다.

'여보! 나 왔어~'

'아이고, 고생했다. 고생했어. 얼른 씻고 자자. 내일 또 출근해야지'

'맞아~ 우리 내일 또 출근해야지. 어우 힘들다 힘들어. 내가 일찍 오고 싶었는데 말이야 못 그랬어'

'괜찮아, 얼른 씻고 와요'


남편은 술 마시면 되게 순수해지는 귀여운 표정이 있다. 마치 아이가 된 듯한 표정. 그 표정을 지으며 힘들다고 말하는 남편의 하루가 얼마나 고되었을까.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대충 씻고, 우리는 내일의 생존을 위해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고생했어 남편~'하면서 뽀뽀로 하루를 마무리하려는데 남편에게서 삼겹살, 치킨, 감자튀김 냄새가 났다.

'엇, 오빠 타임! 양치했어?'

'양치? 했는데?'

'진짜로 했어?'

'응, 그... 6시에 했어, 그 퇴근하기 전에'

'응? 지금 회식하고 양치질 안 했다는 거잖아? 양치하고 오셔야...'

'... 내가 정말 너무 몸이 힘들어서 양치하면 이 잠이 다 깰 것 같단 말이야'

'네? 양치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인데요. 나는 80살에 혼자 갈비찜 뜯고 싶지 않아, 갈비찜 같이 뜯고 싶은데, 영감~ 갈비찜 먹고 싶지? 혼자 먹어서 미안해. 이러고 싶지 않다고오~ 얼른 양치하고 와~'

그렇게 남편은 양치질을 하고 와서 잠이 다 깬 상태로 굿나잇 뽀뽀를 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며칠뒤 주말,

늦잠 잘만큼 푹 자고 남편과 모닝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그리고 넷플릭스도 좀 보다가 또 빈둥빈둥 침대에서 놀다가 뽀뽀를 하려는데, 남편이 한마디를 던졌다.

'엇, 여보 타임! 양치했어?'

'양치? 했는데?'

'진짜로 했어?'

'응 아까 라면 먹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했는데...'

'아, 양치하셔야죠'

'아? 이런 기분이구나? 뭔가 기분이 좀 그런데?'


막 신나서 뽀뽀하려는 나에게 찬물을 끼얹는 한마디 '양치했어?'. 내가 며칠 전 회식 끝나고 돌아온 남편에게 했던 그 말이다. 그땐 정말 뽀뽀하려는데 너무 많은 음식 냄새가 나의 코를 찔러서 양치를 해야만 뽀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말이었는데, 내가 상대방이 되어보니 이게 참 뭔가 듣는 느낌이 좀 그랬다. 양치가 뽀뽀에 대한 기본 예의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음식 먹고 몇 시간 이내에 양치 안 하면 뽀뽀금지! 이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양치했어?' 이 한마디는 나에게 강력하게 다가왔다. 남편은 아주 지혜롭고 강력한 방법으로 내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 방법은 이날 이후로 우리 집의 잔소리 퇴치법으로 자리매김했다.


결혼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헤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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