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범이 Oct 12. 2023

이제 제 보호자는 남편이에요

신혼일기

결혼 전 나는 무슨 일만 있으면, 아니 별 일이 아니어도 전화를 해야 할 생황이 생기면 늘 엄마에게, 아빠에게, 언니에게 전화했다. 낯선 동네에 처음 갈 때는 오늘 어디 간다고 얘기하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면 전화하며 나의 현 상태를 공유했다.

이유는 따로 없었다. 그냥 가족이니까, 내 보호자이니까.


퇴근길 1시간을 달려 지하철 역에 내렸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는 걸어도 30분, 마을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가도 30분이다. 성격 급한 나는 차분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내 몸을 움직이는 걸 선호하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걸어가야지 생각하며 지하철 출구를 올라갔다. 가방을 고쳐 메고, 비는 안 오는지 하늘 한번 쳐다보고 걸어가려는데 출구 옆에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 전동 킥보드와 전동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언젠가 한 번은 타봐야지 했는데 왠지 오늘이 디데이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오늘의 픽은 전동자전거!


앱을 열고 QR코드를 찍으니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 잠금장치가 풀렸다. 주차되어 있는 전동자전거를 뒤로 빼고 다시 자리를 잡고 타려는 순간 바퀴가 저절로 굴렀다. 

떼구르르르- 악! 

전동자전거는 배터리 때문에 무거워서 내가 자전거를 놓을 새도 없이 그냥 그 무게에 내가 끌려가서 쾅! 넘어졌다. 발을 한 바퀴만 굴리면 마치 세 바퀴를 굴린 것 같이 쓩~쓩~ 나가는 게 전동자전거의 장점인데, 주차된 자전거를 빼면서 바퀴가 돌아갔고.... 전동자전거는 지금 내가 끌고 가는지, 내가 타고 바퀴를 굴리는지 알 수 없으니 그냥 쓩~ 본인 갈 길을 가버린 것이다.


넘어지면서 페달에 발도 걸리고, 바구니에 넣어두었던 가방 속 짐들도 바닥에 떨어지고, 그렇게 아플 일도 아닌데 넘어지면서 괜히 욱신욱신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종합적으로 표현하면 순간 서러웠다. 자전거는 그 자리에서 반납하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나 방금 전동자전거 타다가 넘어졌어'

'진짜? 괜찮아?'

'아니 나 타지도 않고 그냥 자전거 좀 빼는데 바퀴가 저절로 굴러서 넘어진 거야ㅠㅠ'

'아이고, 안 다쳤어?'

'응, 다치진 않았는데 너무 서러워. 어디야?'


결혼 전에 이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엄마에게, 아빠에게, 언니에게 전화해서 '어디야? 나 방금 이런 일 있었다' 얘기했을 텐데, 난 휴대폰을 들고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냥 자전거 타다 넘어진 작은 에피소드였지만, 난 이날 느꼈다.

이제 내 보호자는 남편이구나.

내 옆에 평생 있을 사람은 남편이구나. 라는 것을


결혼

나의 보호자가 부모님에서 배우자로 바뀌는 것

이전 19화 결혼 후 남편 첫 생일 제대로 놀라게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