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로라 Feb 27. 2024

장기 투숙 호텔 De Veenen

제가 네덜란드 주재원으로 발령 난 후 현지에서 집을 구하기 전까지 약 3개월 호텔 생활을 했습니다. 암스테르담 남쪽에 위치한 De Veenen이라는 호텔이었는데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평화로운 주택가 운하 앞에 위치한 아담한 호텔입니다. 지금은 중년이 되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젊은 부부가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세계 제1위의 키 큰 국민답게 남편은 거의 2미터, 부인도 180센티 정도의 거구로서 마치 거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항상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고 덩치에 맞지 않게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호텔을 장식하고 세밀하고 따뜻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어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을 아늑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 호텔의 아침 식사는 단조로왔는데 빵과 치즈, 찬햄 (Cold ham) 그리고 토마토가 전부였으며 뷔페식이 아닌 주문식이었습니다. 주문식이라 봤자 아침을 먹겠다 하면 위의 음식들을 내주는 식이었는데 어느 날 앞자리에 앉은 외국 손님 아침 식사에 계란 프라이가 포함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미 며칠 묵은 상태였는데 한 번도 계란이 아침식사에 포함된 적이 없었기에 내가 동양인이라 인종차별 하는 건가 내심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계란 없는 아침을 며칠 뚱하게 먹다가 결국 주인에게 왜 나는 계란을 주지 않느냐고, 지금으로는 좀 유치하지만 당시로서는 심각했던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계란은 주문하는 사람에게만 준다 하더군요. 다음날부터 제 아침 식사에는 항상 계란이 포함되었으며 좀 유치했지만 물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계란 못 먹는 건 상관이 없는데 주인부부가 인종차별을 한다고 계속 오해를 했었을 테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호텔 앞에서 담배를 한대 폈습니다. (당시 저는 흡연자였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주차를 하던 젊은이가 차를 제 앞까지 후진을 하더군요. 저는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의 적극적인 접근이라 경계를 했는데 후진을 해 제 앞까지 와서 창문을 열더니 반갑다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후 다시 전진해 주차를 한 후 제 갈길을 가더군요.  즉 외국인인 저를 환대하는 제스처였는데 예상치 못한 이방인에 대한 적극적인 친절함이라 당시 약간 놀라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호텔에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여가 시간이나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 주변에 비디오 가게가 있어 비디오를 빌릴 수는 있었고 호텔 주인의 조언으로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 플레이어까지 대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여한 비디오 플레이어를 호텔 TV에 연결하는 작업이 의외로 까다로워 2미터 키의 호텔 주인이 불편하게 땅바닥에 앉아 여러 케이블과 씨름을 하며 힘들게 연결에 성공했습니다. 호텔 주인도 뿌듯한지 저에게 군대식으로 거수경례를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 방을 나갔고 그 이후 그 비디오플레이어가 제 무료함을 책임지어 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회사에서 야근을 한 후 밤늦게 먹을 곳이 변변치 않아 저녁을 거르고 호텔에 왔습니다. 이 호텔은 별도로 저녁은 제공하지 않았는데 제가 너무 배고프니 빵이라도 좀 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하니 따뜻한 콩수프 (아마 자신들의 저녁 식사였을 겁니다)와 햄, 빵, 버터를 공짜로 주었는데 정말로 맛있게 먹었던 인생 저녁 중 하나였습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저의 시장함, 호텔주인의 따뜻한 배려가 삼박자가 되어 저의 인생 저녁을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 호텔은 그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내부는 리모델링을 했지만 외관은 그대로이며 식당이나 작은 정원도 그대로이기에 근처를 지날 땐 발걸음을 멈추고 옛 추억을 더듬어 보곤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유럽의 성문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