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에서 제 사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지인이 한국에서 주얼리 제조업을 했는데 그 제품을 유럽에 판매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산업소재 업무와 완전히 다르고 거래처들도 주어리 종사자들이라 생소하고 어색하더군요. 퇴사를 하고 개인사업을 하신 분들 대부분 느끼셨겠지만 회사에 다닐 때에는 회사 자체가 든든한 방풍막이 되어 주지만 개인사업을 하기 시작하니 이런 보호막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야말로 광야에 나 앉은 것 같더군요.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이라는 광야에서요...
여러 가지 판로를 모색하던 중 제품 홍보를 위해 전시회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관련 전시회가 네덜란드 Utrecht라는 도시에서 개최되어 조그만 부스를 내기로 하였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전시회 참가가 제품 홍보는 물론, 회사의 세력을 보여 주는 기회도 되기에 가급적이면 크게, 화려하게 했는데 개인사업을 하다 보니 비용 절약을 위해 최소한의 공간, 최소한의 장식으로 진행해야 했고 이러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부스를 준비할 때 데려온 어린 딸아이가 밖에서 주워온 솔방울에 리본을 감아 부스 한 곳을 장식하려 하는 광경을 보니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저려오더군요. 어린 눈에도 그렇게 하면 부스가 조금 나아 보였던 것 같았던가 봅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객기를 부린 것이 아닌지... 괜히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전시회를 치렀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오히려 높은 현실의 벽을 느꼈습니다.
주어리라는 제품 자체가 저와 맞지 않았고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쌓았던 커리어도 활용할 수 없어 약 1년 후 고민 끝에 업종을 변경했습니다. 새로 시작한 업무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산업 소재를 아시아 지역으로 수출하는 것이었는데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시작했지만 마음은 외려 편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회사를 다니며 해왔던 업무와 유사해 관련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거래처들이 편했습니다. 거래처 (공급자)와의 미팅을 위해 공장을 방문하면 공장의 소음, 냄새들이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았고 섬세한 주어리 거래처들과는 달리 투박한 손으로 악수를 하는 그 손길자체도 반가왔습니다. 역시 제 경험을 살리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고 운도 따라 한국, 싱가포르, 대만에 초도 수출을 성사시키고 이제 이 업무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킬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또 다른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기회란 개인사업을 그만두고 다시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조건 자체가 매력적이었고 비록 개인 사업이 초기 단계는 지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도전이 남아 있었고 당시 환율도 사업에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 끝에 안정적인 방법, 즉 다시 조직에 들어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아깝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안정이라는 달콤함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어린 딸이 전시회 부스 구석에서 솔방울에 리본을 감아주던 시절을 생각하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당시 선택에 후회가 없습니다. 또 개인 사업을 하면서 제 성격 및 능력을 되돌아볼 기회도 생겼는데 저는 개인사업보다는 조직이 체질에 맞는다는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이후 조직생활을 하며 힘들 때마다 낯선 광야에 홀로 서 있었던 개인사업 시절을 생각하면 다시 에너지가 솟구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