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훨씬 억압적이었던 제 세대 학창 시절, 고등학교 졸업은 초, 중, 고 12년 동안의 창살 없는 감방 출소와 같은 해방감을 의미했으며 남학생들의 경우 이 해방을 자축하기 위해 첫 번째로 시작한 것은 술과 담배였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남학생의 약 90 퍼센트가 흡연자였으며 저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당시 "식후 (밥 먹은 후) 연초는 불로장생, 식후 불연초는 3초 즉사"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을 정도로 흡연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저의 첫 번째 해외여행은 1992년 미국이었는데 당시 비행기의 뒷좌석들은 흡연구역이어서 10시간이 넘는 비행 중 금연에 자신이 없는 애연가들은 흡연좌석을 예약하느라 서둘렀는데 흡연석과 비흡연석 사이 별도의 칸막이가 없어 비 흡연석 승객들에게도 담배냄새가 고스란히 밀려왔습니다. 제가 탄 비행기의 한 외국인 스튜어디스는 아예 흡연좌석 통로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워댔을 만큼 그 당시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흡연에 관대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금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뤘던 것을 보아 금연이 절실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한국 본사로 출장을 갔는데 본사 입장에서는 제가 해외 최전선에서 고생한다고 생각해 출장을 올 때마다 극진히 대접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대접이란 결국 술자리인데 1차, 2차 차수를 늘려가다 보니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가 되었고 마시는 술만큼 피는 담배의 양도 늘어났습니다. 몇 차까지 갔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기어 들어와 오후까지 자고 나니 허탈감이 밀려 오더군요. 오후까지 술냄새가 가시지 않은 입안에 텁텁한 담배 느낌이 불쾌하게 남아 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날 담배를 한 갑 이상 피운 것 같더군요. 전날 마신 술과 담배의 양을 인지하는 순간 처자식이 있는 내가 이렇게 막살아도 되나 하고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다음날 출국을 하려고 인천공항으로 갔습니다. 출국 수속 후 평소의 버릇대로 담배를 보루로 사려고 면세점을 기웃거리다가 전날에 느낀 자괴감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 평생 처음으로 제 의지가 흡연욕을 이겨 담배를 사지 않고 비행기에 올랐으며 그 이후로 20여 년간 피워왔던 담배를 입에 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금연 후 금단증상이 있어 전자담배도 좀 펴보고 금연껌도 이용했지만 이 기간이 모두 합쳐 1개월을 넘지 않았고 금연한 지 15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담배 생각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옆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면 생전 담배를 피워보지 않았던 사람처럼 콜록콜록 기침도 나고 불쾌함을 느껴 사람 몸과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간혹 금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 금연법을 물어보면 저는 "죽기 살기로 하루 날 잡고 담배를 펴라. 술과 함께 라면 더 좋다. 그렇게 하루 네몸과 마음을 완전히 망가뜨려 자괴감을 느끼며 그걸로 잃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봐라. 그러면 담배를 끊기가 한결 쉬워질 거다"라고 조언합니다. 결단력이 별로 없던 저에게도 통했던 방법이니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