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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der Nov 20. 2024

이쯤이면 송년회

죽지 않고 다시 송년회

송년회 일정이 잡혔다.


"올해 송년회는 수요일에 합시다!"

작년 12월에 송년회를 하고 기억에서 잊고 있던 '송년회'라는 단어가 다시 사무실에 등장했다. 예전에는 참 많은 술자리가 있었다. 별 기념일도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회식에서 서로의 서열을 정리했던 기억만 나는데, 그 서열을 따지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어쨌든 올해도 사라지지도 않고 송년회는 또 돌아왔구나. 송년회라는 단어는 1년 내내 낯설다가 날씨가 추워지는 12월에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회식과 거리 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돌고 사회적 거리를 두고 나서 회식이라는 명목의 술자리는 거의 사라졌던 시기가 있었다. 2019년 이후부터 참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싶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장점은 직접 방문해서 처리해야 했던 일들이 비대면으로 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끝없이 2차에서 3차로 이어지던 회식 문화가 희미해졌다는 점도 있다. 단점은 직접적으로 마주치는 대인 관계가 어색해지고 희미해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짧은 기간 많은 생활 풍경이 변화한다. 코로나 시기에 줌(Zoom)으로 집에서 각자 자신의 술을 준비해 송년회를 즐기며 떠들던 모습도 떠오른다. 앞으로 회식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궁금하다.


"작년 송년회를 복기하니..."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부서장님이 오시고 두 번째 송년회가 다가온다. 작년에도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부서장님을 모시고 송년회를 하는데 다들 어색한 경험이었다. 누군가 용기를 내서 소주를 주문해서 마셨고 결국 주정을 부리면서 송년회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송년회가 없겠구나 싶었다. 역시 나쁜 경험이 행동의 변화를 이끈다. 어차피 술도 안 마실 양반이 왜 저녁 술집에서 송년회를 하자고 해서 뭐 하는 것인가 싶었다는 앞자리 직원의 말대로 누군가는 취하고 누군가는 멀쩡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자리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는 누군가 있다는 것은 찜찜하다.


"송년회 자리 배치가 시작되었다."

이번 주 부서장이 의식의 흐름에서 사라졌던 송년회 날짜를 잡으라는 명을 내리셨다. 예전 부서장은 맨날 술만 먹지 말고 송년회에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부서장이 숨만 쉬고 있어도 불쾌해서 보고 싶던 뮤지컬이었지만 아무것도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부서장이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되었던 것이 가장 기쁜 날이었다. 아무튼 이번 송년회에는 음주를 좋아하는 인원들과 술을 마시지 않는 부서장과 함께 할 테이블로 구분하여 자리를 잡기로 계획해 본다. 이렇게 남과 북이 갈라진 송년회 자리에서 나 같은 사람들은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으로 중간에 자리를 배정받아 박쥐같이 중간에 낀 느낌으로 난감할 뿐이다. 올해 송년회도 가시방석 예약이다.


1장 개인〉조직: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개인과 조직의 갈등 p.216

가족 같은 회사가 어디 있나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운명 공동체로서 ‘가족 같은 회사’ 일 때 만들어진 여러 가지 전통이 이어지기가 어려워져요. 회식이나 워크숍은 ‘으쌰으쌰’하면서 동료들과 뭉치기 위한 자리잖아요. 수고했다고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운명 공동체로서 엮일 생각이 없는 잘파세대에게 회식은 하기 싫을 뿐 아니라 안 해도 되는 회사 일의 연장입니다. 회사가 잘파세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면 회식이 아니라 돈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는 잘파세대다》(이시한, 알에이치코리아, 2023.10.30.)


어차피 회식을 한다고 해도 뭉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회식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서로 이익이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술자리로 문제를 덮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는 자리를 갖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나이다. 과거에 군대는 어떻게 다녀오고, 회식은 그렇게 했는지 점점 기억에서 멀어진다. 어쩔 수 없이 군말 없이 송년회는 참석하지만 토끼가 집에 간을 두고 왔다는 말처럼 마음은 집에 두고 참가하겠습니다.

"돈으로 못 주실 거라면 송년회 말고 맛있는 거 포장해 주시거나 배달시켜 주시면 집에서 고마워하면서 먹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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