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책 읽기 - 이상과 현실

by Onda

나는 아이에게 책을 정말 많이 읽어줬다.

말을 빨리 하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었고, 똑똑해지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몸으로 뛰어노는 놀이가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어주는 게 나한테는 가장 편한 육아 방식이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책을 읽어줬다. 우리 아이는 분명 말이 빠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적당한 시기에 말문이 트이긴 했지만, 이렇게나 많이 읽어줬는데도 또래보다 특별히 언어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지금도 꾸준히 읽어주고 있지만, 여전히 그렇다.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나는 아이가 내 무릎에 앉아서 차분히 그림책을 보길 바랐다. 그림을 가리키며 "이게 뭐지?" 하고 물어보면, 아이가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랬다.

아이는 책장 넘기기 놀이에만 심취했다. 그림이나 이야기는 안중에도 없고, 그냥 책장을 앞뒤로 넘기는 게 재미있는 거였다. 얇은 종이책은 찢어지고, 비싸게 산 팝업북은 아이 손에 망가졌다.

조금 커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페이지에서만 머물러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같은 페이지만 계속 보다가, 억지로 넘기면 울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는 조급해졌다. "여기 토끼 어딨어? 토끼 찾아봐!" 이런 퀴즈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뭘 아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책을 읽어준 보람이 있는지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실망했다. 아이는 내 표정을 읽었다. 책 읽는 시간이 즐겁지 않게 되어갔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시기에는 책이 그냥 장난감 같은 거야."

책 자체를 넘기고, 만지고, 던지고, 눌러보는 게 재미있는 거라고. 책이라는 존재 자체에 친해지게만 두면 된다고. 퀴즈는 그만하자. 그냥 읽어주기만 하자. 이렇게 생각하며 나를 다스렸다.

플랩북이나 사운드북, 다양한 재질이 들어간 촉감놀이 책, 팝업북은 확실히 아이가 더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그냥 일반 그림책도 나름 재미있게 봐줬다.

같은 책을 무한히 반복해서 읽어주는 건 당연히 각오해야 할 일이었다. 내 소중한 팝업북을 아이가 찢어버려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이려 애썼다.


아무리 책을 읽어줘도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니, 부모로서 흥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보이지 않게 흡수하고 있었다.

책에서 '안녕' 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느 순간부터 아이도 책을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림책 속 드라이기를 알아보고는 손으로 가리키며 '위~~~' 소리를 냈다.

어느 날은 호랑이 그림을 보고 무섭다며 울기도 했다. 그림 속 호랑이가 진짜인 것처럼 말이다.


말문이 트인 후로는 더 신기한 일이 생겼다.

책에 나왔던 문장들을 그대로 써먹기 시작한 거다.

달이 구름에 가려지는 모습을 보고는 "구름 아저씨 안돼요 안돼!"(<달님 안녕> - 하야시 아키코)라고 외쳤다. 햇살이 좋은 날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 했더니 "햇빛이 반짝반짝 빛나!"(<우리 나가 놀자> - 루시)라고 대답했다.

먹을 걸 좋아하는 우리 먹보 아기는 책에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자기도 먹고 싶다고 했다. 책 속 인물에게 "친구야 이거 하나 나눠줄래?"라고 물어보며, 책에 있는 그림 음식을 먹는 시늉도 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어줘야 할까?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남는다. "그래도 어떤 책을 골라야 하나요?"

나도 그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서점에 가면 수천 권의 그림책이 있고, 온라인에는 "필수 전집", "0세 추천 도서" 같은 정보가 넘쳐난다.

전집을 살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50권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건 10권 정도였다. 나머지 40권을 위해서도 돈을 내야 한다는 게 석연치 않았다. 게다가 "이걸 다 읽어줘야 하나" 하는 부담감까지 생겼다.

그래서 나는 단행본을 하나씩 골랐다. 시간은 더 걸렸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책을 고를 수 있었다. 다양한 작가의 그림체를, 각기 다른 이야기 방식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고르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나도 처음엔 막막했다. 그때 도움이 된 곳들이 있다.

1. 한국 북스타트 - 전문가들이 매년 연령별로 추천하는 목록. 우리 아이 월령에 맞는 책을 찾기 좋았다.

2. 칼데콧 상, 볼로냐 라가치 상 - 예술성이 뛰어난 그림책들. 아이가 당장 이해하지 못해도, 좋은 그림을 보여주고 싶을 때 찾았다.

3. 도서관 추천 목록 - 도서관 사서들이 고른 책은 대체로 믿을 만했다.

이런 목록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 있는 출발점'을 준다. 거기서 시작해서, 우리 아이 반응을 보며 하나씩 조정하면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신이 그 책을 읽어줄 때 즐거운가?'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좋은 책'이라도, 당신이 읽어주기 지루하다면 소용없다. 억지로 읽는 목소리는 아이에게도 전달된다.

반대로 당신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그 즐거움이 목소리에 담긴다. 자연스럽게 표정이 풍부해지고, 억양이 살아난다. 아이는 그 에너지를 느낀다.

그러니까 추천 목록도 좋지만, 서점에 가서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을 골라보자. 당신의 감이 생각보다 정확하다.


영유아기 책 읽기는 정보 전달이 목적이 아니다.

함께 책을 보며 나누는 시간, 눈을 마주치고, 웃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같은 그림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의미 있는 거다.

책장만 넘기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답답해하지 말자. 그것도 아이만의 책 읽기 방식이니까. 같은 책을 백 번 읽어달라고 해도 짜증내지 말자. 그게 지금 아이한테 필요한 거니까.

토끼를 찾으라고, 색깔을 맞추라고, 퀴즈를 내지 말자. 아이가 확실히 알 때까지는. 그냥 "토끼가 있네!" 하고 말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변화가 당장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는 분명히 흡수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책에서 봤던 문장을 일상에서 꺼내 쓰는 순간이 올 것이다.

완벽한 책을 찾으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 지금 손에 있는 책, 당신이 읽어주고 싶은 그 책으로 충분하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줘도 아이가 천재가 되는 건 아니다.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는 책보다 당신의 목소리를, 당신과 함께한 그 시간을 기억할 거라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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