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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Apr 23. 2024

조세핀 페인, 이화학당 3대 교장 역임하고 양화진 안장

이화학당 본관 건물 건축하고 중등 교육을 도입

조세핀 페인 선교사(1869~1909)는 독신으로 17년을 이 땅에서 활동한 여선교사이다. 이화학당 3대 교장으로 활동하면서 중등 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또 이화여대 본관 건물을 신축한 여성 선교사이다.


그녀는 186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태어나서 보스턴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1892년 뉴 잉글랜드 교사 양성소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다. 그리고 감리회 여성 선교부 뉴잉글랜드 지부의 후원을 받아 파송 선교사가 되었다. 그녀의 선교 동기는 고교 졸업 후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아펜젤러 선교사의 강연을 듣고 한국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했다.


그녀는 1892년 8월 23세 나이로 이 땅에 다. 서울에서 1년간 한국어 및 문화에 적응한 후 1893년 9월 3대 이화학당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학생들에게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며 15년간 헌신하였다.


또한 뛰어난 행정 능력으로 학교를 발전시켰다. 나라가 튼튼하려면 몸이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체조 과목을 정규 과목으로 도입하였고 또한 프라이 선교사와 함께 생리학 과목을 신설하여 여학생들에게 소개하였다.

* 이화학당은 스크랜턴 여사에 의해 시작되었고, 2대 로드 와일러 학장에 이어 페인이 3대 학장으로 봉직하였다.


그 후 1900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각처를 돌며 강연하면서 기부금을 모집하여 이화학당 본관 건물을 서양식으로 건축하였다. 1904년에는 중등 교육 과정을 개설하여 여성들이 고등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의 부당성을 미국에 알렸고,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 독립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07년 15년간 헌신한 이화학당 교을 프라이 선교사에게 인계하였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어머니처럼 따뜻한 인정을 베푼 선교사로 이화 70년 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교장을 사임 후 인천을 중심으로 복음 사역에 매진하였다. 과로로 쓰러지기 전 2년간 강화도 및 해주 지역에 순회 전도 활동을 하며 활발히 복음을 전하였다. 해주 인근 지역 75개 교회에서 강연을 하였고, 강화도 주변 61개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녀의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여 1909년 해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 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면역이 약한 몸 상태에서 콜레라에 감염되어, 그해 9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의 시신은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녀가 평생 지니고 다닌 성경에는 <나의 집은 하나님뿐, 그리스도께서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네, 나는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팔에 누이리라>라고 적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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