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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May 24. 2024

찰스 어빈, 활명수 개발한 부산 초기 의료 선교사

가정적 문제로 선교사 사임하고 한국에서 병원 운영

찰스 어빈 선교사(어을빈, 1869~1933)는 부산 초기 활동한 의료 선교사이다. 전킨 병원을 개설하여 16년간 환자를 돌보았고, 한센병 환자가 생활하는 상애원 설립에 기여하였다. 선교사 은퇴 후 부산에 민간 병원을 세우고 만병수(소화제)를 개발하여 명의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오하이오 주 슈리브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1893년 콜럼버스 시 오하이오 의과대학(현 오하이오 주립대)을 졸업하고 의료 선교사로 자원하였다.


1893년 11월 북 장로교 선교사로 부인 베르타와 함께 내한하였다. 부인은 같은 고향 여성으로 선교사 임명 후 결혼하였다. 그는 부산으로 배속되어 한국 문화에 적응하면서 1894년 3월부터 의료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부산에 온 세 번째 선교사이고, 의사로는 두 번째 선교사이다.


 * 부산의 첫 번째 선교사는 1891년 10월 도착한 윌리엄 베어드 부부(목사, 4년 거주하고 대구로 이동)이고, 두 번째는 1891년 12월 도착한 휴 브라운(의사, 1867-1896) 부부였다. 브라운은 시약소를 만들고 환자를 돌보았으나 자신이 폐결핵에 감염으로 2년 만인 1894년 1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896년 29세의 나이로 뉴욕 댄빌에서 소천했다.


그는 메리 콜린스 휘팅 시약소를 개소하여 운영했고, 1903년 9월에는 전킨 기념병원(부산 최초 근대식 병원) 초량에 건립되어 이곳에서 환자를 돌보았다. 그는 사역을 중단하기 전까지 이 병원에서 연평균 6천~1만 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그는 한센병 환자 돌보는 사역에도 헌신하였다. 빈톤, 스미스와 함께 나병 선교회를 설립하여 1910년 한국 최초로 한센병 환자 수용 시설인 부산 상애원을 건립하였다. 그 후 상애원은 어빈 사임 후 호주 선교회로 위임되었다.


그는 복음 전도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베어드와 함께 지역 순회 전도활동에 참여하였고 시골 지역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복음을 전했다.


1910년 부산은 미국 북 장로교 사역을 중단하고 호주 선교회가 도록 합의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1910년 10월까지 선교사 직을 수행한 후 1911년 4월 공식적으로 사임했다. 사임 사유는 선교부 이관과 더불어 가정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 부인과 이혼하고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일을 언급하는 듯하다. 부인 베르타는 이혼 후 일본에 가서 재일 한국인을 위한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선교사 사임 후 부산 영선 고개에 어을빈 의원을 개원하여 환자를 돌보고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만병수(활명수 같은 소화제)를 개발하여 의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부산에 지속적으로 거주하다가 1935년 소천하여 복병산에 안장되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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