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존 맥래, 장터에서 코넷 불며 찬송하고 전도한 선교

경남 마산과 거창에서 복음 전한 선교사

by 신재천

프레드릭 존 맥래(맹호은, 1884~1973) 선교사는 경남 마산에서 25년간 복음을 전하고, 또 거창 선교부 설립에 기여헌 호주 선교사이다.


그는 스코틀랜드 콕펜(Cockpen)에서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91년 그의 아버지가 호주 투락 교회로 청빙 받아, 호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멜버른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재학 중에는 학생 선교 운동 및 빈민지역 봉사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영국 글래스고의 연합 자유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 선교대회에서 땅끝까지 복음 전해야겠다는 소명을 받았다. 그는 호주로 돌아와서 한국 선교사로 지원하였고, 1910년 9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의 안수식에서 멜버른 대학 학생들이 성가를 불렀는데, 이때 성가를 지휘한 알렌(A, W Allen)도 영향을 받아 훗날 한국 선교사로 내한했다.


그는 1910년 11월 부산으로 내한하여 진주에 배정되었다. 진주를 거점으로 커를 의사와 함께 산청, 함양, 함안 등 경남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 활동을 시작하였다.


1913년 6월에는 거창으로 이동하였고, 켈리 목사(길아각, 1912~19) 부부와 함께 거창, 안의, 함양 지역의 9개 교회를 섬기면서 거창 지부를 설립하였다. 그는 거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며 장터를 방문하고, 코넷으로 찬송가를 연주하면서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1915년에는 마가레트 홀과 결혼하였고, 그해 10월 마산으로 이동하였다. 그는 마산에서 1940년까지 25년을 헌신했다. 그는 마산에서 생후 2년 반인 딸 캐서린을 잃는 슬픔을 겪었는데 그 딸은 마산 선교사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그는 경남 지역의 교회 설립에 적극적이었는데, 함안 구성교회, 평림 교회, 거창 성기 교회, 의령 백야 교회, 합천 구월동 교회 등이 그가 설립 혹은 협력한 교회이다.


머리 라이얼(라대궐)이 휴가 기간(1916~18)에 창신학교 교장으로 섬겼고, 그 후 라이얼 선교사순직 후 후임으로 1920년 3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24년 신축 교사를 건축하였는데 당시 마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2층 벽돌 건물이 되었다. 다음 해인 1925년 자체 재정 운영이 안되어 호주 선교부가 창신학교를 인수하고 호신학교로 이름을 개명하여 맥레가 운영하였다. 그해 호신 초등학교, 1929년 의신 유치원을 추가 설립하였다.


그는 1940년 안식년으로 스코틀랜드로 돌아갔으나,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스코틀랜드에서 병원 원목으로 사역하다가 1973년 1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부인 마가렛 홀 여사는 영국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가 능숙하였다. 그래서 일본인과 교류가 많아 친일파로 의심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1920년 마산에서 야학교를 설립하여 가정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한 학생들을 모아 밤에 공부를 가르쳤다. 1939년까지 야학을 운영하다가 1940년 스코틀랜드로 돌아갔고 1948년 소천하였다.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블 매켄지, 부산 한센병의 친구로 불리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