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무화과 Sep 26. 2023

꿈속에서 매일 만나

어김없이 머릿속에서 일렁인다. 온도는 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떠올리고자 눈을 감고 미간에 살짝 힘을 줘보아도 어떠한 모습도 그려지지 않았다.

[ 나는 너의 가장 –  -- -- - 이야 ]

그가 나의 무엇일까, 온도의 귓가엔 그의 음성이 흘렀지만 그마저도 어떠한 광휘가 온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를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었다. 온도는 매일 밤 꿈속에서 그를 만난다, 꿈속에서 만난 그는 온도의 주위를 맴돌며 들릴 듯 말 듯 소곤거리며 귓가를 간지럽힌다.

“ 당신은 누구인가요? ”

그는 온도의 물음에 대답한 적이 없다. 답 없는 물음은 끝나지 않는다, 그저 잠에서 깨는 순간까지 그는 온도의 귓가를 간지럽히며 괴롭힐 뿐이다.

“ 너무 괴로워요, 매일 당신을 그려요. 당신을 보고싶어요. ”

다시금 환하고 아름다운 빛이 온도의 온몸을 휘감았다.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셔 온도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자신을 매일 같이 찾아오는 이는 누구일까,

[ 나는 너의 시작이야 ]

가쁜 숨을 고르며 눈을 떴을 때엔, 온도의 앞에 그는 없었다. 그저 식은땀을 잔뜩 흘린 채로 숨을 허덕이며 천장을 마주한 온도의 녹아내린 육체만 존재했다. 매일 잠에서 달아났을 때의 온도는 녹아내려버렸다. 그의 빛은 너무도 강렬했고 온도는 그것을 버텨낼 수 없었다. 온도는 그저 녹아버린 눅눅한 자신의 몸이 다시금 원 형태로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의 모습을 되새겼다.

언제부터 그가 온도에게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온도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다, 매일 그가 온도에게 찾아오는 탓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어떤 계절인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온도는 그저 무력하게 녹아내리다 다시 굳길 반복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그의 말을 기억해 냈다, 나의 시작이라니. 그와의 시작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온도에게 자신의 시작을 기억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온도는 다시금 그 빛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눈을 감아 그를 마주하고 싶었다.

“ 저는요, 제 나이도 몰라요.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어떤 계절인지 몇 월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제가 기억하는 건요, 당신뿐이에요. 당신을 보고 싶어요 ”

[ 도망가지 마 ]

“ 도망가지 않아요, 저는 당신만을 그렸어요. “

[ 내가 너의 - -   -  -  ]

다시금 그의 음성이 일렁거렸다, 온도는 그와의 첫 대화가 감격스러웠으나 다시금 꿈에서 깨어나 이 순간이 저버릴 것이 두려웠다.

“ 제발.. 제발.. 이렇게 가지 말아요.. 제발 ”

[ 나 -  -- 는 --- -  -- ]

“ 제발.. 안돼, 안돼요.. 안돼 ”

이내 온도의 몸에 강렬한 빛이 언제나처럼 휘감겼다. 온도는 울부짖으며 흘러내렸다. 온도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꿈에서 깨면 언제나 녹아흘러버리는 자신, 그저 숨만 붙은 채로 녹았다 굳길 반복하는 삶. 꿈밖에서의 온도는 형태를 잃어버린다, 단절된 삶을 흘려보내는 자신에게 진짜 현실이 존재하는 것일까?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꿈속에서의 자신이 아닐까? 자신의 시작점은 어디인지, 언제까지 흘러갈지 아무것도 알 수없었다.

온도는 언제나처럼 입안 가득 삼켰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 온도야 ]

다정한 음성이 들렸다,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입이 열리지 않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꿈속이 아닌가? 온도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입안 가득 다시 삼켰다. 이번엔 그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날들이 잦아졌다.

[ 너는 나의 천국이야 ]

“ 저는 당신과 함께 하는 지금이 천국이에요 ”

언제나처럼 밝아졌다. 온도는 또 녹아내렸다, 다시 굳는다. 다시 삼킨다.

“ 보고 싶어요 ”

[ 도망가지 마 ]

밝아진다. 녹아흘러버렸다, 굳었다. 삼켰다

“ 사랑해요 ”

[ 도망가지 마 ]

밝다. 녹았다. 굳었다. 삼켰다.

“ 보여줘요 ”

[ 도망가지 마 ]

밝다. 삼킨다. 삼킨다. 흘렀다, 아니 굳었나 삼켰던가 삼켰다. 녹았다. 아니 밝다 아니 녹았다. 밝다. 삼킨다. 삼킨다. 흘렀다, 아니 굳었나 삼켰던가 삼켰다. 녹았다. 아니 밝다 아니 녹았다. 밝다. 삼킨다. 삼킨다. 흘렀다, 아니 굳었나 삼켰던가 삼켰다. 녹았다. 아니 밝다 아니 녹았다. 밝다. 삼킨다. 삼킨다. 흘렀다, 아니 굳었나 삼켰던가 삼켰다. 녹았다. 아니 밝다 아니 녹았다. 밝다. 삼킨다. 삼킨다. 흘렀다, 아니 굳었나 삼켰던가 삼켰다. 녹았다. 아니 밝다 아니 녹았다.

“ 온도야 ”

다시 밝았다.

흐르는 온도의 손에 찬기가 느껴진다, 아니 뜨거운가.

“ 보고싶었어요.. ”

그를 느낀 적이 있었던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이 손은 틀림없이 그일 것이라 확신했다. 몇 번의 삼킴 끝에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음에 안도했다. 자신의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그는 나의 천국일 것이다. 나의 시작이며 나의 가장 - -- 다음이 기억나지 않았다.

“ 가여운 우리 온도, 가장 빛났었는데.. 네가.. 나의 전부였는데 ”

“ 아 ”

온도는 흐느끼는 그의 음성을 들으니 기억났다. 도망갈 걸 그랬어. 그냥 도망가 버릴걸, 그냥 약이나 잔뜩 먹고 도망가 버릴걸, 이왕 도망가는 거, 이왕 약을 삼키는 거 더 많이 더 자주 삼켜서 그냥 사라져버릴걸. 다시는, 아무것도,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많이 먹고 도망가 버릴걸

“ 미안해요 ”

그래도 사랑해요, 다시 보고싶었어요.


작가의 이전글 해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