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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무화과 Oct 02. 2023

너와 닮은 사람

어느 날 나보다 더 이르게 세상에 존재한 사람, 저는 그 사람을 참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합니다.


그녀는 지지예요, 저의 사촌언니인 그녀는 어린 시절에는 제 우주였답니다.


저는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합니다, 나는 성악설을 믿어 바로 우리 지지를 보면서 말야. 그녀는 영악했고 그럼에도 어린 저는 그녀가 좋았습니다.


어린 제가 뭘 알까요?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날이 서있는 아이였고 아는 것이 없는 저는 그럼에도 그녀가 안쓰러웠습니다.


그 안쓰러움은 저를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산타를 기다리는 제게 산타는 없다고, 엄마아빠가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는 것을 봤다고 소리 질렀고 저는 엉엉 울었습니다. 어른들은 지지가 나쁜 아이라 부모님이 선물을 준비해 준 거라 말했고 저는 산타를 믿지 않는 지지가 안쓰러웠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아했어요

어째서 나의 우주가 된 건지 도통 모르겠지만, 정말 좋아했어요.


제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들, 그들은 지지를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날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제가 처음으로 무너진 날이요.


할머니 생신이 다가왔고, 지지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술에 취해 토를 하면서, 토를 할 때마다 울컥울컥 나오던 피를 저는 보지 못했지만 제 눈앞에서 본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알 수 없는 각종 보호대와 깁스, 목발 같은 것들을 하고 걸어오던 지지가 아직도 기억나요.


조금만 빗겨나갔으면 걷지 못했을 거고, 조금만 늦게 발견했으면 과다출혈로 세상에 없었을 거란 말은 꽤나 오래 제 안에 부채감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지금은 벗어났지만, 사실 모르겠습니다.


전조증상을 알았던 저는 너무 어렸고 방법을 몰랐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좋아할 땐 지지를 닮은 사람으로 골랐습니다, 가정에 불화가 있고 자신을 혐오하며 술에 취해 살고 담배를 피우고 자해를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만 좋아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또 다른 지지를 구원함으로써 제 부채감을 덜려고 했습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사랑했던 지지인데,


어른이 되어 자라난 저는, 누군가가 지지 같은 모습을 보이면 그 순간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됩니다. 마음에 혐오까지 자라려고 해요


제가 제 자신을 갉아먹던 시절에, 저는 지지와 같은 모습이 있었어요. 나를 혐오하고 다치게 하고 늘 술에 취해있고 약에 취해있었습니다, 나를 구원할 누군가를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제가 지지를 너무 닮아있어 걱정되었습니다, 지지가 슬퍼할까 봐요. 자신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할까 걱정되었습니다. 저와 지지는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요, 언젠가


제가 지지를 닮았을 때, 오로지 사랑만을 믿고 나를 버렸을 때요. 그때의 내가 지금 달라진 것엔 다른 이들의 도움이 크다고 생각해요.


곁에 있어준 저의 친구들이요, 온 마음을 다해 곁에서 손잡아준 그 수많은 맑은 마음들이요.


지지와 저의 모습이 지금은 달라진 이유엔 주변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운이 좋았고 지지는 운이 없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 운만을 믿고 살 수 없어 나약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나약함이 나를 다시 그렇게 만들까 봐 두렵습니다.


술을 먹고,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지지가 매번 제게 하는 말은 [ 내가 언니야, 내가 언니인데 왜 네가 언니인 것처럼 구니? 넌 왜 그렇게 언니처럼 굴어 ]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너무 아파요,


나도 알어, 언니가 언니인 거. 내가 동생인 거,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듣는 거죠.


저는 살면서 작년이 가장 희망차고, 풍요로웠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행복한 한 해는 처음이었습니다, 죽음에서 멀어진 삶은 정말 찬란했어요.


올해는 가장 평온하고 즐겁습니다.


가진 것이 없지만, 가진 것이 없어 평온하고 즐거워요.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은 한 해였어요, 아직 올해가 남았지만 많이 이룬 것 같아요.


제 삶에는 이리도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는데, 지지의 삶의 평온은 언제 드리울까요?


지지를 사랑해요, 안쓰러워하고 염려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싫어요. 어쩔 수 없는 그 모습들이 싫어요.


술에 취해 전화를 끊지 않고 택시에서 내려 소주를 사서 병나발 불며 더글로리에 동은엄마 같은 그의 모습이 미칠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랑하고 안쓰러워하고 염려하는 마음에 잠든 지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이 제 일입니다.


저는 언제까지 그를 염려할까요?


언제, 저는 [지지]라고 뜨는 그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지 않고 흔쾌히 받게 될까요?


아픔은, 그저 아픔으로 보낼 순 없는 걸까요?

그 아픔을 술로 보내야 할까요?


지지가 저의 거울 같아 두렵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지지가, 평온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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