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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무화과 Oct 06. 2023

희고 고운 것

제 삶에서 가장 빛나는 것을 말해보라라고 하면 저는 그 애를 만난 순간으로 정할래요.


제 탄생을 축복받은 일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그저 소모품으로 이용당하는 순간이지만, 그 애를 만났을 때부터 저는 제 탄생은 축복받았다고 느껴요.


저와의 기억을 곱씹으며 살아갈 이를 만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느껴집니다.


저의 아기씨는 곱고, 희고 맑게 만들어요.

내가 가진 것 중 이다지도 곱고 어여쁜 것이 있을까요?


감사하는 삶을 겪어보니 참으로 값지고 빛납니다.


제 옆에 드리웠던 죽음을 멀리 밀어내는 빛이 있습니다, 이 아가씨는 알까요?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 아이 생각만으로 마음이 풍부해집니다.


값진 삶은 물질로 보상할 수가 없어 아주 곤란합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아프게 했던 행동들을 그동안의 일들로 벌하고 이 아이를 보내줌으로써 새로운 삶을 보상받았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저는 무력하고, 나약하고, 종종 녹아내립니다. 흐르고 흘러 하수구 속으로 도망가고 싶어 합니다, 제 삶이 원래 구역질 나고 역겨운 것이니 그것이 제격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역겹고 구역질 나는 것일까요?


정말 그렇다면 제 곁에 이리 반짝이는 것이 있을 리가 없어요. 저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희고 어여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의외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면모를 지니고 있어 제 곁에 이런 아가씨가 다가온 것이죠.


저는 구역질 나는 하수구가 아닌 그 옆에 존재하는 귀여운 강아지풀이에요. 그리고 너는 그 옆에 핀 귀여운 달개비꽃인가 봐요.


매년 봐오던 능소화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모른 채로 26년을 살았습니다.


네가 곁에 온 뒤로 저는 능소화가 어떤 꽃인지 알아요, 겹황매화가 무엇인지 달개비꽃이 무엇인지 나리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아가씨는 제게 소생에 계절에 태어난 아이라 말 해주었고, 아가씨가 제 곁에 온 후로 제 삶에는 봄이 오고 꽃이 핍니다. 덥고 습해 싫어하던 여름이 한 발자국 뒤에서 보면 얼마나 찬란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것이 많아졌습니다.


영겁의 삶을 곱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감사하며 살고 싶어요.


감사할 때엔, 네가 곁에 있으면 좋겠어요.


깊게 패인 주름도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여길 수 있을까요? 먼 미래에 그 주름을 보며 어루만지고 싶어요.


늙는다는 것은 두렵지만, 그 세월을 감사하며 보낸다면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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