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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무화과 Oct 19. 2023

내 딸 선아

“저 낡아빠진 선풍기 좀 이제 갖다버려 ”

신경질적인 목소리, 선아는 지긋지긋했다.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해 보여 이 공간이 숨이 막혔다. 집, 집, 집에만 오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 작게 읊조리며 전형적인 한국 아빠들처럼 까다롭고 얄팍하게 굴었다.

다만 선아는 생각했다, 자신이 얄팍한 사람이 아니라 구질구질함이 사람을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만든다고. 낡아빠진 선풍기 하나를 버리지도 못하는 구질구질함에 괜히 얄궂은 사람이 되었다.

“왜 버려~ 아직 쓸만한걸”

인상을 잔뜩 구긴 선아와는 다르게 미선은 넉살 좋게 대답했다.

“엄마, 뭐가 쓸만해! 덜덜거리는 소리 들어봐. 곧 선풍기 날개가 날아와서 사람 죽이겠어.”

문 닫고 선풍기 켜고 자면 죽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낡은 선풍기 날개가 날아와서 사람 죽인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선아는 본인이 말하면서도 내심 어이가 없었지만, 또 이렇게 넘어가면 미선은 낡아빠진 선풍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미선은 알겠어요~ 알겠어~ 콧노래를 부르며 먹기 좋게 깎은 배를 내왔다. 그런 미선을 보니 괜스레 심술 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선아야, 배 좀 먹어봐~ 비가 그리 왔는데도 배가 참 달다?”

“나 참! 또 이렇게 넘어가려는 걸 누가 모를 줄 알아?”

“아이고 드셔요, 드셔~”

미선은 선아에 입에 어거지로 배를 밀어 넣었다. 미선은 배를 집어먹는 선아를 보며 어릴 적에는 새초롬하니 말도 잘 듣고 순하기만 했는데, 어쩌다 이리 한 번씩 승질을 부리는지. 어릴 때는 낯을 너무 가려 걱정이었는데, 선아가 괘씸하다가도 아무렴 어떤가, 별 탈 없이 잘 자랐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미선은 선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저 선풍기 갖다버려. 이제 우리 구질구질하게 안 살아도 되잖아”

선아는 생각했다. 미선이 아직도 가난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닌지, 명욱이 거액의 빚을 남기고 죽어버렸을 때, 그때 머물러있어 저 낡아빠진 선풍기를 안 버리는 것인지.

“엄마, 우리 이제 빚도 다 갚았고! 옛날처럼 그렇게 안 아껴도 돼. 선풍기가 뭐야 에어컨도 바꿔줄 게 내가”

안쓰러웠다. 선아는 미선이 안쓰러웠다. 한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온 미선의 삶이 안쓰러워 미칠 것만 같다가도 그의 삶이 저 자신을 조여왔다, 선아는 스무 살이 되던 해 미선에게서 도망쳤다. 매주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미선에게서 도망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좋은 것, 새로 나온 것들이 있으면 미선의 집에 들였다. 이 집에서 더 이상 구질구질한 것은 없었다, 저 빌어먹을 선풍기 빼고

“선아야, 이 선풍기가 그렇게 싫어?”

“어, 다 망가진 게 뭐가 좋다고 끌어안고 살아?”

“엄마는 이 선풍기가 좋은데”

미선은 오래된 선풍기가 아직 작동되는 것이 좋았다. 낡고 오래된 선풍기는 선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즈음에 집에 들였다. 어린 선아는 목욕하고 나와 선풍기 바람에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내며 키득거리기도 했고 티셔츠를 길게 쭈욱 늘여 그 안에 선풍기 바람을 넣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선아가 중학생이던 때엔 명욱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어려워진 형편에 참 어려웠다, 그해 여름이 가장 뜨거웠다. 더위를 많이 타는 선아는 땀을 뻘뻘 흘렸고 당연하게도 에어컨을 들일 형편이 되지 않았다. 선아가 잘 때 선풍기를 강풍으로, 회전 기능은 끄고 오로지 선아를 향해 돌려주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선풍기인데, 선아는 오래된 선풍기가 구질구질하다니 선풍기가 선아의 말을 알아들었다면 참으로 서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커버린 딸, 선아. 선아의 손을 잡았다. 참 작았는데 어쩜 이리 예쁘게 컸을까. 자라는 것을 매일 매일 보았는데도 새삼 새롭다. 선풍기가 낡아버린 것처럼 자신도 늙어버렸다, 다만 선아는 참 생그럽게 자랐다.

“어휴! 몰라!”

미선은 잠시 생그럽지만, 고약한 딸이라고 생각했다.

선아는 벌떡 일어나 커다란 어항 앞에 앉았다, 처음에는 작은 어항이었다. 선아가 스무 살이 되고 미선이 집에 들인 것이다. 어항에 작은 금붕어들 몇 마리가 있다가 작은 금붕어들은 조금씩 자라나 이제는 커다란 금붕어가 되었다. 금붕어의 크기에 맞게 어항도 자라난 것이다. 금붕어들과 함께 어항도 나이를 먹었다.

“물고기 키운 지 얼마나 됐지?”

“글쎄~ 한 5년 됐으려나?”

“와~ 엄마는 뭐든 오래두네..”

선풍기도, 물고기도, 한 가지를 집에 들이면 죽기 전까지 이 집안에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선아는 뭐든 버리지 않는 미선의 성격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미선을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환경오염 때문에 제로웨이스트가 유행하지 않는가, 그저 사실은 제 마음의 부채감을 덜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미선은 그저 정성을 주고, 물건을 잘 관리하는 것뿐이다.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잘 관리해? 선풍기도, 어항도..”

“선아야, 뭐든 정성과 사랑을 주면 되는 거야~”

“대단하네, 정성이라..”

“엄마가 제일 잘 둔 게 뭔지 알아?”

“뭔데? 저 선풍기?”

미선은 싱긋 웃으며 선아의 콧잔등을 톡 쳤다. 자신이 가장 잘 둔 것은 선아였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에도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준 선아, 그 흔한 사춘기도 없었다. 한여름에 더울까 선풍기를 제게 쐬어주면 새벽에 일어나 제 엄마에게 다시 바람을 돌려주던 나의 딸 선아, 이 구질구질한 집안에서 멀리 도망갈 법도 한데 제 엄마가 걱정되어 몇 년간 매주 주말 친구와 놀지도 않고 찾아와 주는 내 딸 선아. 자신이 정성 들이고 사랑을 준 것 중에 가장 잘 자란 것은 미선의 딸 선아였다.

“아니, 내 딸. 내 딸 선아지”

“뭐야, 웃기는 아줌마네~ 선풍기 안 갖다버리려고!”

미선은 선아의 볼을 쓰다듬었다, 알 것 같았다. 선아가 왜 이리 선풍기를 싫어하는지, 주말마다 왜 자신을 보러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선아는 오래된 것이 싫다고 했다, 어항 안 물고기도 다른 집들에서 살아가는 어항에 비하면 오래된 것이지만 선아는 주말마다 어항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선아가 싫어하는 오래된 것은 따로 있고 미선은 그 오래된 것에 담긴 선아가 좋았다.

“선아야, 주말마다 엄마 보러 안 와도 돼.”

“…”

“가끔은 친구들이랑 좀 놀고, 집에서 쉬기도 하고, 너무 멀리 가진 말고, 가끔은 한 번씩 들러줘”

선아는 자신의 볼에 얹어진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그 손을 꼭 잡았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냥 하는 말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정한 미선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선아는 생각했다.

엄마, 내가 영영 도망가 버리고 싶어지면 어떡해. 만나지 않는 주말이 하루가 되고, 그 다음 주가 되고, 그 다음 달이 되고, 몇 년이 되고 평생이 되면 어떡해. 이대로 도망가서 엄마를 두고 영영 돌아오기 싫어지면 어떡해.

“엄마가 제일 잘 둔 게 내가 아니면 어떡해?”

“네가 아니면 저 선풍기가 되겠지,”

미선은 싱긋 웃으며 선풍기를 향해 눈짓했다. 선아는 생각했다, 저 선풍기가 참 문제라고, 낡아빠진 선풍기가 있어 자신이 미선에게 제일 잘 둔 것이 될 수 있었다고, 적어도 저 낡아빠진 선풍기가 있어 도망가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내 부드러운 미선의 손이 선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선아는 자기 삶에서 가장 오래된 미선의 곁에서 도망가고 싶어 하는 자신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또 잠시나마 도망침을 보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초가을임에도 후덥지근한 날씨에 미선은 선아를 향해 선풍기 바람을 돌려주었다.

선아는 그저 낡아빠진 선풍기가 문제라고 생각하며 미선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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