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났다. 완희형은 투어를 나간다. 우리는 첫날 만났을 때 반가움의 포옹을 한 것처럼 이별의 아쉬움의 포옹을 했다. "조심히 가, 소중한 양균" 완희형이 말했다.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짐을 하나도 싸놓지 않았기에 몸을 일으켜, 그냥 보이는 내 물건을 다 캐리어에 쑤셔 넣었다. 한국에 도착하니 형은 내가 놓고 간 물건을 사진 찍어 보내준다.
비가 정말 많이 내렸다. 폭우였다. 나는 무거운 캐리어를 두 개나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간의 황홀함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듯 하늘은 아주아주 강한 비를 뿌려주었다. 내심 한편으로 비행기가 결항되기를 아니면 내가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어제 만난 빈과 울이 알려준 방법대로 공항에 가니 불행히도(?) 늦지 않았고, 어제 만난 명은 나랑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비행기를 타고 명절을 보내러 한국으로 갔다. 기가 막힌 우연이다. 그런 명이 있어서 비행기도 수월하게 탔다.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마구잡이로 싼 짐 덕분에 수하물은 무게가 심히 초과되어 50만 원 가까운 돈을 수하물로 썼다. 가방에 든 게 50만 원어치도 안될 텐데 50만 원을 결제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미련했지만 그땐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한국에 왔고, 파리에 가기 전보다 훨씬 더 정신없게 살고 있다.
파리에서 난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온전히 더 감각하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스쳐 흘려보내는 모든 것들. 아주 소박한 것 하나하나 까지. 했다 보다는 느꼈다. 그렇기에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이유는 책도, 박물관도, 미술관도 아닌 삶에, 여유에, 음악에, 웃음에, 춤과 땀 속에 있었다.
분명 파리를 또 갈 거고, 아마 더 큰 감동을 느낄 일이 있을 것이고, 그날까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살아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