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늘 숙제가 따른다. 학창 시절 학교 숙제가 항상 있었듯 숙제는 우리 곁을 늘 맴돈다. 학교 갔다 와서 숙제를 해놓고 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반면 숙제를 바로 안하고 쌓아두면 마음 한 구석에 뭔가 불편한 마음이 자리 잡아 지금도 힘든 일을 먼저 해놓는 습관이 있다. 잘 풀리는 숙제와 잘 풀리지 않는 숙제, 쉬운 숙제와 어려운 숙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숙제와 가벼운 숙제. 숙제는 늘 내 옆에 다양하게 있다.
방학에 제일 싫었던 숙제는 일기, 자연 관찰, 만들기였다. 다를 것도 없는 일상인데 매일 일기 쓰려니 머리를 쥐어짜다가 개학이 다가올 때쯤 한꺼번에 밀린 일기를 쓴 일. 날씨 관찰은 도대체 왜 내주는 건지 이해도 안 되는 고기압, 저기압을 우습게 그렸던 일. 강낭콩을 키우며 나오지도 않은 떡잎을 그렸던 일, 만들기 숙제로 끙끙 댄 일 등은 모두 추억이 되었다. 책을 좋아해서였을까. 그나마 독후감 숙제는 할만 했던 것 같다.
과목별로 주어진 학교 숙제 외에도 친구 관계는 그 시절 가장 큰 숙제였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는 학창 시절을 가장 크게 좌지우지하는데 다행히 그 숙제는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가 그 때의 우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행운이다.
학창 시절로 끝날 줄 알았던 숙제는 대학에 가니 더 많아졌다. 매 수강 과목마다 제출해야 할 레포트와 과제는 왜 그렇게 많은 건지...만약 논문까지 쓰고 졸업했다면 머리에 쥐가 났을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한 달 간의 교생실습은 값진 경험을 한 잘 풀린 숙제였다. 그 경험이 토대가 되어 지금까지 독서논술 강사로 일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업무 이외에도 상사들을 대해야 하는 태도가 숙제였다. 결혼 전까지 비서실에 2년 간 근무했던 나는 그 정신적 어려움이 더했다. 전화가 와도 연결해야 될 전화인지 조심스럽고 스케줄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했다. 실수도 있었고 신경 쓰이는 업무들이 많아 적성에도 많지 않아 결혼하면서 퇴사할 때 홀가분하고 미련이 조금도 없었다.
결혼을 하면 숙제가 없을 것 같았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식구를 숙제로 맞게 되면서 지금까지 그 숙제는 줄지 않는다. 집안일도 음식도 아이들 양육도 해야 할 일도 참 끊임 없이도 많다. 아이들 양육할 때는 더 많은 숙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라 서툴렀지만 자식 농사는 가장 중요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사랑으로 품고 애지중지하며 노심초사하며 키우다 보니 어느새 사회로 진출해 독립한 아이들을 보니 숙제를 많이 끝낸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춘기를 심하게 겪지도 않고 크게 반항하지도 않고 순하면서도 심성 곱고 착하게 자란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지금 한창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고등학생 늦둥이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있다. 시험 기간이면 예민해진 아들과 똑같이 잠도 못 자고 교육비는 왜 이렇게 많이 드냐며 투덜거린다. 난 웃으면서 금방 지나간다며 말해준다. 제일 힘든 시기인 것 확실하지만 곧 입시의 스트레스와 대학 입학, 군대 문제, 졸업 후 입사. 결혼 등 앞으로 남은 숙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 친구도 알고 있을 테니까.
요즘 나의 가장 큰 숙제는 수영이다. 처음엔 호흡이 안돼서 수영을 포기할까 싶었고 배형, 접영은 지금도 즐기지 않는다. 평형이 시작 되었을 때 앞으로 나가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남편이 틈틈이 가르쳐준 덕분에 지금은 가장 즐겨 하는 영법이 되었다. 그나마 포기하지 않고 2년 가까이 배우다 보니 마지막 영법인 접영까지 왔다. 시간 날 때마다 유튜브 강습과 자유 수영으로 능숙하진 않지만 모든 영법을 하게 됐어도 접영은 아직도 어렵고 도무지 늘지 않는 숙제이다. 그 숙제는 연습밖에 답이 없다.
두 아들의 결혼도 내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이다. 여자 친구가 있어 올 봄에 작은 아들이 먼저 결혼을 했고 내년 봄에는 큰 아들의 결혼이 정해져서 집까지 계야해두니 한시름 놓인다. 결혼 적령기보다 이른 나이긴 해도 비혼주의 젊은이들이 많아진 시대라 안도가 된다.
두 아들의 결혼이 아직 실감은 안 나지만 평생을 함께 할 사랑하는 반려자를 만나 부모 곁을 떠나 새 출발하려는 아들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숙제를 잘 마치게 되기를 바란다.
이제 남은 숙제는 건강하면서도 즐겁게 사는 것이다. 건강을 잃는 순간 삶의 질이 떨어짐을 경험하고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실감을 맛본다. 건강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건강을 잘 관리해서 마음 편히 살기를 바랄 뿐이다. 벌써부터 독립한 아들들 덕분에 자유도 맘껏 누리고 꾸준히 글도 쓰고 이곳저곳 여행도 하면서 한층 여유가 생겼다.
다만 홀로 남으신 두 어머님이 외롭지 않게 마음을 더 써드리고 언젠가 천국으로 가실 때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숙제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생에는 크고 작은 새로운 숙제들이 늘 기다린다. 숙제는 끝이 없고 완전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떤 숙제들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몰라도 헤쳐 나가고 완성해나가겠지. 한편으론 숙제가 있는 인생에 감사하며 그 때마다 주어진 숙제를 끝내기 위해 힘을 다해 전력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