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 오름의 슬픈 노래

ㅡ제주 4.3 사건의 비극ㅡ

by oj


얼마 전 4.3일이 지나면서 민족의 아픔을 떠오르게 했다. <다랑쉬 오름의 슬픈 노래> 는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다룬 책이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일어난 제주 4.3사건은 우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 역사 중 하나이다. 같은 민족에게 공산화 된 반공 단체란 오명을 씌워 평범했던 사람들 2만 5천에서 3만 명이 학살 당한 끔찍한 사건은 우리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다.


제주에 갔을 때 4.3 공원에 가본 적이 있다. 지금은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되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제주 4.3 특별법> 을 만들어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 회복과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를 착수했고 2003년 10.31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을 인정하며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는 <4.3 기념일> 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정부 차원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1947년 3.1 기념일 행사 때 초등생 어린이가 기마병의 발발굽에 치여 죽는 사고로 군중들이 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야유하며 경찰서에 몰려가자 습격으로 오인해 발포해 6명의 사망자와 중상자가 나오면서 발단된 사건이다.


당시 미군정 당국은 오인이 아닌 정당방위로 주장하며 사람들을 연행하자 민심이 분노하며 전국으로 퍼진다.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자 좌익이 선동한다고 판단해 포고문을 발표해 2500명이 구금되고 무장대 공격이 시작된다.


북한이 공산화 되자 남한으로 내려온 청년들이 만든 반공 단체인 <서북 청년단> 은 군인과 경찰 창설에 참여하고 1948년 단독 정부를 반대하는 남로당이 개입하면서 남로당 토벌이란 목적으로 제주 4.3사건의 진압과 학살에 개입한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강경 대응은 제주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주민들이 산과 동굴에 피신하고 마을은 불타면서 대 혼란을 겪게 만는다. 1949년 사령부가 설치되고 귀순자 사면 정책으로 대거 하산하고 무장대 총책이 사살되면서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4.3 관련자가 즉결처분 되면서 그 피해가 컸다. 1954년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되고 종식 되면서 사건은 끝났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평범한 경태네 마을에서도 그 때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본 순사로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던 민수 아버지는 일본 패망 후 도망갔다가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 돌아와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역사 청산이 되지 않아 많은 매국노들이 버젓이 경찰에 군인이 되어 돌아와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활개칠 수 있었던 일은 가장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에 초기 정치는 혼란과 미흡이었다.


3.1운동 기념식 사건이 일어나자 항의를 한 사람들을 폭동으로 여겨 총격을 가하고 평범했던 마을은 하루 아침에 쑥대밭이 된다. 사람들은 지서로 끌고가서 고문과 폭력을 당하고 산과 굴로 피신하며 지낸다.


종국이는 삐라를 주운 일로 잡혀 아버지가 대신 끌려가고 경태 할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도장을 찍어준 일로 잡혀 소로 갚고 풀려나고 누나는 시청 사람에게 강제로 시집을 가게 됐다. 보리쌀을 뺏는 사람들과 싸우다가 경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태네 집은 불타고 삼촌은 일본으로 떠난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 사람들은 민수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죽이자 민수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총살한다. 군인들이 폭도굴을 찾아내 형과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끌려갔다가 겨우 돌아온 일로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다. 결국 민수 아버지를 죽창으로 죽이고 민수는 괴롭힘을 당하다가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엄마와 마을을 떠난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아름다운 남쪽 제주에 이런 비극적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참 가슴 아프다. 지금도 제주엔 제주도민들이 숨어지내던 굴과 흔적들이 오름 곳곳에 남아있다. 그 곳에서 겨우 몸을 숨기며 살다가 겨우 살아나오거나 안따깝게 목숨을 잃기도 한 곳이라니 볼 때면 참 마음 아프다.


5.18 민주화 운동처럼 뒤늦게라도 진실이 규명되었지만 그 피해 규모를 보면 어마무시하다. 작은 일은 아니었지만 바로 사과하고 수습했다면 그렇게 큰 피해로 확산되진 않았을 것 같아 참담하다. 3.1운동 때 벌어진 일이 도화선이 되어 6년 동안이나 이어진 대규모 희생이라니 그들의 무고한 희생에 애도를 표한다. 국가의 사과로 이어지고 명예를 회복한 건 다행스럽지만 여전히 씁쓸한 역사이다.


<서울의 봄> 이란 영화처럼 잘못된 역사의 과오는 반드시 후대의 심판을 받는다. 앞으로 이런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안정된 정치는 안정된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분명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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