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임금의 눈물> 은 단종의 이야기로 역사의 배경과 어린 단종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픈 동화이다.
문종이 승하한 뒤 12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수양 숙부의 야욕으로 양위에 이어 영월로 유배를 간 뒤 사약을 받고 17세로 단명한 단종. 단종만큼 짧은 인생 두려움에 떨다가 단명한 왕이 또 있을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라는 수양을 연기한 영화배우의 유명한 대사로 <관상> 이란 영화가 개봉 됐을 당시 숙부의 위협으로 양위에 내몰려 두려워하던 어린 단종이 잊히지 않는다. 계유정란을 일으켜 단종을 보위하던 김종서와 그 측근을 숙청하고 차근차근 왕이 되기 위한 야망을 불태운 수양은 과거에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 태종 이방원을 떠오르게 했다.
단종을 다시 보위에 오르게 하려고 움직인 사육신들의 계획이 실패하면서 처참하게 거열형을 당해 죽어간 사육신과 이 때문에 영월로 유배간 뒤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된 어린 단종은 역사상 비운의 왕 중 하나이다.
책에서는 단종이 사약을 받기 전에 스스로 자결한다. 수양은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게 해서 청령포에 둥둥 떠다닌 단종을 생육신 중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수습해 안장해 주었다. 선왕이지만 처연하게 살다 간 단종을 생각하면 수양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욕심은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단종은 누이인 경혜 공주와 남매의 의가 좋아 누이의 집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단종의 누이인 경혜 공주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동생과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그 삶을 꿋꿋하게 이어갔다. 아들 정미수를 낳은 후에 재산을 몰수당해 관비가 되었지만 나중에 세조가 측은하게 여겨 재산과 직위를 다시 하사한다. 또 세조 비의 도움으로 공주의 신분을 회복하고 아들 정미수는 역적의 자식임에도 큰 관직을 얻어 정종반정까지 가담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병수발을 정성껏 했다는 걸 보면 경혜 공주는 효심이 깊고 나라의 주요 관직을 맡아 성공한 아들을 보면서 동생과 남편의 억울한 죽음과 자신의 기구한 삶을 조금은 보상 받았다고 느꼈을까. 끝까지 원통하고 비탄함을 잊지 못했을까.
예전에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공주의 남자> 라는 사극에서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비극적 사랑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룰 수 없는 둘의 가슴 아픈 애절한 사랑을 응원했는데 아버지의 복수는 실패했지만 세조 비의 도움으로 목숨만은 부지해서 둘의 사랑을 이룬다는 결말로 끝이 났다.
그 때 경혜 공주와 부마의 사랑 이야기도 함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단종 복위 운동으로 남편이 거열형을 당하는 장면에서 오열하는 경혜 공주는 그럼에도 아들을 낳고 그 모진 인고의 시간들을 견뎌내며 강인하게 삶을 이어왔다. 공주에서 역적으로. 관비에서 비구니로 살다가 다시 공주로 신분을 회복했어도 억울하게 죽어간 동생과 남편은 평생 한이 되어 한시도 잊지 못했으리라.
수양의 뒤에는 한명회라는 정치에 능한 자가 있었다. 계략에도 능하고 현실 파악도 빠른 그는 수양을 왕위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으로 그의 두 딸을 예종과 성종의 왕비로 만들 만큼 권력자가 되었다. 하지만 기세 등등했던 그의 말로도 과히 좋지는 않았다. 수양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던 한명회는 압구정을 지은 뒤에 성종의 분노를 사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다. 기회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난 그 좋은 머리를 자신의 권력을 취하는 것만이 아닌 옳은 정치를 위해 썼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의 정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씁쓸하다.
수양이 세조가 된 뒤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과 역사서 동국통감을 만들고 국방에도 힘썼지만 피부병으로 고생하다 승하하고 그의 아들 예종도 단명한 것을 보면 단종의 피눈물이 그들을 복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한 건 아니었을까.
한 나라의 왕은 그 업적이 기리 후대에 남는 만큼 백성을 위한 어진 정치와 덕을 쌓아야 한다. 그러면 후대 사람들에게도 칭송되어 그 이름이 빛나는데 애민정치를 실천한 아버지 세종이 위대한 대왕으로 존경받은 것에 비해 아들 수양의 행보는 너무 대조적이라 아버지보단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야심이 컸던 할아버지 태종이 아닌 애민 정신으로 백성을 사랑한 아버지 세종을 닮아 단종을 옆에서 잘 보필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역사는 만약이 없고 단지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만 있을 뿐이다. 임금이란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비운의 짧은 삶을 살다간 어린 단종의 처연한 삶과 아픈 역사는 지금까지도 조명 된다.
영월에서는 해마다 단종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가장 밝게 빛나는 사자자리의 어린왕자 별(레굴루스별)을 단종별로 명명하기로 했다. 사자자리는 7~8월의 별자리로 단종이 태어난 8월과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비운의 왕이지만 하늘에선 밝게 빛나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