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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May 08. 2024

남편의 3종 반찬 셋트

ㅡ어버이 날을 맞아ㅡ


이번 주 어버이날이 다가와서 어머님 댁에 다녀왔다. 가족들 모임은 미리 시간을 맞춰 식사를 했고 각자 시간될 때 다녀오자고 했다. 호박죽과 밑반찬 세 가지를 갖고 집에 들어가니 어머님이 벌써 갈비찜을 해놓으시고 갈치를 꺼내놓으셨다. 밖에서 식사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간다는 말에 냉동실에 있던 고기를 꺼내서 요리를 해두셨다. 용돈만 조금 드렸을 뿐 대접을 해드린게 아니라 대접받고 온 기분이었다.


갈비찜은 연하고 부드러웠고 남편이 베란다에서 구운 갈치로 맛있게 점심을 먹는데 우리가 먹기좋게 가시까지 다 발라주었다. 아이들 어릴 때도 고등어나 갈치를 구우면 가시를 다 발라주어 먹기좋게 만들어 놓은 후에 자기 식사를 한 남편이다. 결혼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일이다. 갑자기 너무 당연하게 누리는 내가 무슨 복인가 싶었다. 어머님과 남편은 손재주도 음식 솜씨도 꼼꼼함도 자상함도 정말 많이 닮았다.


남편에겐 별명이 많다. 뭐든 잘 고친다고 해서 내가 붙여준 맥가이버. 아들들은 알뜰신잡. 언니들은 요리 잘 도와주는 남편을 이모님이라고 부른다. 혼자 사는 남동생과 일하느라 바쁘면서도 엄마를 모시고 사는 여동생에게 반찬을 자주 해주는 언니들에게 나도 좀 먹고 싶다고 말하면 의례히

 "넌 이모님 있잖아."

 한다. 여자들에게 3대 이모님이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 청소기라는데 나에겐 요리 잘 하는 남편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식구들이 인정할 만한 요리 솜씨를 가진 남편은 정말 요리를 잘 한다. 직장 다닐 때도 주말이면 국수나 파스타. 스테이크를 만들어주곤 했는데 퇴사하고 난 뒤 시간이 많아진 남편은 요리를 더 즐긴다.


며느리를 맞으면서 한 달에 한 번 오는 아들 부부와 어머님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한 남편이 최근 들어 3종 밑반찬 셋트를 즐겨하고 있다. 연근조림. 땅콩 호두 조림. 진미채 볶음이다. 게다가 연근. 매실. 드룹 짱아찌까지 섭렵했다.


작년에 샐러리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샐러리로 짱아찌를 담갔는데 상큼해서 입맛을 돋구었다. 전에는 양파와 오이 짱아찌를 주로 담갔지만 언제부터인가 잘 안 먹길래 샐러리로 해보았더니 제격이었다. 그 뒤부터는 남편이 다른 짱아찌에 도전을 시도했다.


봄이라 여린 두룹이 나와서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먹은 날 맛있다고 했더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드룹 짱아찌를 담갔다. 일주일이면 먹으니 맛이 정말 좋았다. 연근이 나올 때는 연근 짱아찌와 조림 두 가지를 선보였는데 둘 다 정말 맛있어서 아들에게도 보냈더니 좋아했다. 사돈께도 작년에 매실 짱아찌를 보내드리자 잘 드셨다고 했다. 매실. 드룹. 연근 짱아찌 모두 일품이었다.


요리에 재미를 붙인 남편은 반찬 가게 해야겠다며 우스갯소리까지 했다. 조금만 젊었다면 반찬 가게 해도 될법한 솜씨였다. 아들 부부 반찬 준다고 진공 포장기를 사서 상하지 않게 포장해 주고 어머님이 좋아하는 밑반찬이며 엄마가 좋아하시는 호박죽에 요리하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다.


난 그런 남편 덕분에 요리를 점점 뒤로 하고 아들들이 독립한 뒤로는 주방에서 많이 해방 되었다. 쌀도 줄지 않는 우리집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이제 나보다 남편이 더 잘 안다.


남편의 MBTI는 전형적인 T에 혈액형은 A형 같은 O형인데 난 F에 O형 같은 A형이다. A형 여자와 O형 남자가 잘 맞는다는 말이 있다. 남편은 합리적이고 꼼꼼한데 비해 난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조금씩 보완하며 살고 있다. 뭐든 억지로는 안 된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지 시킨다고 되지는 않는다. 요리를 좋아하는 대신 설거지는 아주 싫어해서 요리를 한 뒷정리는 고스란히 내 몫이지만 난 요리보다 설거지가 편하니 그것 또한 잘 맞는다.


음식 솜씨 좋고 자상한 남편을 둔 덕분에 결혼 30년 동안 행복한 여자로 살아온 난 어머님께 감사하다. 아직 카네이션 달아드릴 어머님 두 분이 계신 것도 정말 감사하다. 남은 여생 아프시지 말고 우리가 해드리는 음식 많이 드시고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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