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j May 13. 2024

마음만 있으면

네이버 블러그 그림

가족 영화가 나오면 어머님이나 엄마를 모시고 극장에 갔었다. 두 분 모두 폭력적인 영화나 외국 영화는 맞지 않아서 가족적이거나 감동적인 드라마 같은 영화를 주로 봤다.


아버님께서 10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이 끝나고 혼자 남으신 어머님의 거취 문제를 상의할 때 어머님은 시골 생활을 그대로 하시겠다고 단호하게 말씀 하셨다. 그 뒤로 각자 형편 되는대로 생활비를 드리고 돌아가면서 자주 찾아뵙기로 했다. 혼자 사시면서도 부지런히 텃밭을 가꾸고 동네 어르신들과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해드시고 주일이면 예배에 다녀오시면서 몇년 동안 씩씩하게 사신 어머니였다.


1년이면 명절 두 번. 어버이날. 아버님 기일. 여름 휴가. 어머님 생신. 김장 때 등 어김없이 시골에 다녀왔다. 그러다 보니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금. 토요일을 이용해 시골에 가게 되고 어머님과 시간을 보내고 왔다.


우리가 가면 시내에 나가 무거운 생필품을 사고 장도 보고 온천도 모시고 가고 외식도 했다. 특히 시골집이 추워서 의례히 온천을 모시고 간 일은 딸노릇 해준다고 좋아하셨다. 가끔씩은 좋은 영화가 나오면 모시고 가서 함께 본 일도 기분전환이 되신 것 같아 뿌듯했다. 시골 극장에서 함께 본 영화 중에 좋아하셨던 영화가 <수상한 그녀> 와 <청년 경찰> 이었다.


<수상한 그녀> 를 보면서 아이들처럼 깔깔거리고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뒤에 나문희씨가 50년 젊은 심은경으로 바뀌면서 젊음을 즐기고 연애 감정도 느끼는 모습에선 대리만족을 하신 것 같기도 하셨다. 나중에 사고 당한 손자에게 수혈을 해주고 다시 젊음을 잃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나문희씨 앞에 똑같이 사진을 찍고는 김수현으로 젊어진 박인환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나문희씨를 태울 때는 박장대소를 하셨다. 김수현의 까메오 출연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800만 관객을 끌었을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여서 어머님은 지금도 그 영화를 기억하신다.


<청년 경찰> 에서는 박서준과 강하늘의 케미가 돋보였다. 젊은 패기의 두 경찰 대학 학생들이 호감을 갖던 여자가 납치 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사건에 휘말리면서 수사를 돕는다는 내용을 코믹하게 풀어간 영화였다. 두 젊은이들의 케미도 좋았고 곳곳에 코믹 요소와 액션이 들어가 있어 자칫 무겁고 무서운 주제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갔다. 폭력 영화를 좋아하지 않던 어머님도 위기 상황에선 감정이입을 하시면서 긴장하시고 사건을 해결했을 땐 안도하셨다.


우리가 쉽게 하는 일들을 어머님과 엄마는 예전에도 지금도 누리지 못하셨다. 꽃구경. 영화. 찜질방. 여행 등과 같은 작고 단순한 일조차도 말이다. 소소하게라도 누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드린 일이다. 생각보다 좋아하셨고 그 뒤론 시골에 갈 때마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나 미리 찾아보게 됐다.


펜데믹이 시작되고 병원에 가실 일이 많아지면서 시골 생활을 청산하시고 자식들이 사는 근처로 이사오신 어머님과 이젠 더 쉽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도 3년 동안 제약이 많았다. 모두가 겪은 힘든 시기여서 어머님이 혼자 시골에 계셨다면 걱정이 더 많았을 텐데 이사하신 일은 그야말로 시기적절했다.


펜데믹이 끝나면서 어머님과 엄마를 모시고 함께 본 영화는 <육사오> 였다. 로또가 북한으로 날아가면서 로또를 찾기 위해 남북한 군인이 공조한다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마지막에 찾은 로또를 갖고 당청금을 찾으러 가면서 로또를 속옷에 붙여 변태남으로 오해받는 장면에서 두 분 모두 눈물이 날 정도로 웃으셨다. 돈이 든 가방은 결국 무용지물이 됐지만 남북한 민족애를 다뤄주어 감동도 있던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두 분과 식사를 하면서 영화 얘기도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가족 오락 영화가 많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효도가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젠 나이가 드시니 그나마도 쉽지가 않다. 여행을 같이 가고 싶어도 다리가 아프시다며 싫다고 하시고 좋아하시던 가족 영화도 두 시간을 앉아있는 것과 소변 문제로 더 불편해져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제일 좋다고 하신다. 가수 임영웅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콘서트 영상을 극장에서 상영한다고 해서 예매를 해두었다가 3시간이란 말에 기겁하셔서 취소하셨다. 대신 집에서 보실 수 있게 영상 콘텐츠를 보여드렸다. 이젠 긴 시간 앉아계시는 것도 힘들어 하신다.


86세가 되니 이제 건강이 예전같지 않아 자잘하고 소소한 일이라도 좋아하시는 일이 있다면 찾아서 마음 써드리려고 한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마음만 있으면 말이다.

이전 04화 눈물의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