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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6. 2024

분리 불안


큰아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마음 아프다. 어릴 때 3.4학년 때까지도 엄마와 떨어지는 걸 몹시 두려워하는 분리 불안이 있었는데 모두 내 탓 같았다. 약간의 트라우마도 작용했고 이런저런 이유도 원인이 되었다.


가장 큰 트라우마는 21개월 때 찾아온 맹장 수술과 복막염까지 진전된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했던 순간이다. 배가 아프다는 어린 아이의 병명을 찾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 시간을 허비하다가 서울역 소아병동으로 가서야 맹장인 걸 찾았지만 이미 터져 배가 잔뜩 불러온 아들의 응급 수술이 진행 되는 동안 남편을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의사를 원망하다가도 내가 강하게 우겨 입원을 더 빨리 시키지 못한 것까지 다 후회 되었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타들어가는 마음과 초조하게 기다린 시간은 살면서 가장 큰 고통이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중환자실에서 이틀 있는 동안 아이가 겪었을 두려움과 공포는 아이를 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열이 안 떨어져 일주일 이상 입원하고 퇴원할 때 감사와 안도가 함께 흘러나왔지만 그 일은 나중에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자주 밤에 일어나 울고 깊이 잠들지 못해서 많은 걱정을 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주고 기쁨을 주는 것만으로 효도를 다 한 것이다.


그 후에 4살 때 바로 옆 단지 언니네 집에 갔다가 우리 아파트로 오면서 상가 앞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손을 잡고 오다가 잠깐 길가 노점상 물건 사는 사이에 없어졌다.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상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상가 지하까지 내려갔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언니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정신없이 울며 상황을 알리자 바로 나온다고 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뱃속에 둘째가 거의 막달이었지만 뱃속의 아이 걱정은 전혀 되지 않았다.


 앞이 캄캄하고 어쩔줄 모르고 있을 때 언니가 아들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엄마가 안 보이니까 이모네 아파트로 다시 갔다가 동을 지나쳐서 어딘지 몰라 당황해 울고 있는 아들을 한 아주머니가 손을 잡고 내려와서 마침 언니와 만나 인계받아 데리고 온 것이다.


아이들은 보통 앞으로만 간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다시 되돌아갈 거란 생각을 못 했다. 시간은 10분 정도였지만 난 한 시간도 더 넘은 것 같이 맘고생을 했더니 기운이 쭉 빠졌다.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웠는지 아들도 많이 놀라 길을 잃은 후 두 번째 트라우마가 생겼다.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려 그제서야 배가 꼬이는 것처럼 아파와서 한참을 누워 있어야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아찔한 경험이었다.


 한 번은 일을 시작하면서 아들을 돌봐주시기로 한 지인 분이 좀 늦는다고 해서 잠깐 기다리면 올 거라고 안심시키고 출근을 했다. 마음이 불안해서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갔더니 아주머니는 오시지 않았고 아들은 혼자 잠이 들어 있었다. 일단 안도를 하고 화장실에 갔더니 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아서 속옷을 벗겨봤더니 제대로 닦지 않아 말라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4살밖에 안 된 아이가 4시간을 혼자 견디며 얼마나 두려웠을까 싶어 너무 미안해서 꼭 안아주고 깨끗이 씻겨주었다. 그 뒤로 언니가 돌봐주었는데 몇 번의 트라우마는 아들의 심리를 많이 불안하게 했다.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하교 후에 할머니집으로 갔다가 학원 끝나면 비슷한 시간에 오는데 어느 날 집에 왔더니 아들이 꺽꺽 울고 있는 것이다. 놀라서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서 무서웠다는 아들의 말에 놀랐다. 그 때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들을 안아주며 심각하게 걱정이 들었다. 분리 불안이 생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일을 겪게 한 것 같아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마음이 짠하고 일을 그만 두어야 할까 고민을 했다. 남편이 펄쩍 뛰며 일을 그만 두라고 했지만 더 어렸을 때도 버텨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 후 되도록 혼자 있게 두지 않고 학원으로도 데리러 가면서 함께 있다는 생각을 자꾸 심어주었더니 차츰차츰 좋아졌다. 나아지지 않으면 상담을 받으러 가려고 했는데 4학년 이후로 성격도 활달하고 씩씩하게 변하면서 안정을 찾아갔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워킹맘들의 고충이며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랬던 아들이 이제 내년이면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대견하기도 감사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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