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여러 자아가 있다. 자아란 생각. 감정을 통제하며 행동의 주체인 자신이다. MBTI의 16개의 유형으로 알아보든, 내 경험에 의한 자아를 파악하든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경험적 자아 외에 프로이드는 무의식의 자아를, 융은 자기와 대응되는 자아를, 칸트는 도덕적 자아를 강조했다. 도덕과 양심을 담당하는 초자아도 있어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자기 합리화나 투사, 왜곡 등의 방어기제가 나오기도 한다.
내 안에도 여러 자아가 있는 것 같다. 외향도 있고 내향도 있고, 어느 날은 마음이 더 지배하고 어느 날은 행동이 지배하고 어떤 때는 별일 아닌 인데도 화가 나고 어떤 때는 너그럽게 이해되는 등 그때그때 다르다.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아차 싶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바쁘게 몸을 움직인다. '쉬자'와 '안 돼'의 두 자아가 갈등한다.
집안 일은 기본적으로 해두고 정해져 있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내겐 시간이 꽤 자유로운 편이다. 이 시간을 마냥 하릴없이 보내기 너무 아까운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시간 활용을 잘 하고 동시에 무료함도 덜었다. 쉬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건 일석이조이다.
오남매인 우리 형제도 자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큰언니는 시크함. 둘째 언니는 엉뚱함. 나는 털털함. 막내 여동생은 유쾌함. 막내 남동생은 선함 등 제각각이다.
아들들도 마찬가지이다. 첫째는 날 닮아 외향에 사교적이고, 둘째는 아빠를 닮아 내향에 계획적이다.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인데도 성격도 취향도 개성도 같은 것이 거의 없다.
누구나의 자아가 다르 듯이 가끔은 내 마음을 나조차도 모를 때가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하지만 신속히 결정하는 편이다. 물론 후회할 때가 있어도 지난 일은 되도록 빨리 기억에서 지운다.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는데 자꾸 집착하면 괴롭고 마음만 힘들 뿐이다. 갈등을 최소한으로 줄여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해서 스트레스 지수가 낮은 편이다.
결정 장애를 가졌다고 말하는 지인이 있다. 약속시간. 장소, 메뉴 등 알아서 다 정해달란다. 뭘 원하는지 말하면 선택이 편한 데도 자긴 모르겠다며 그걸 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단다.
비교적 계획형인 편인 난 약속이나 여행 일정이 정해지면 어디로 갈 건지 미리 정해놓고 시간도 명확하고, 계획대로 움직여야 마음이 편하다. 평소에도 정해진 계획 안에서 움직이고 남는 시간에는 쉬면서 집안 일, 약속, 어머님 댁 방문, 여행 남편과 산책 등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반면 덜렁거리고 꼼꼼하지 못하다. 잘 쏟고 잘 떨어뜨리면서 실수가 잦은 허당기가 있다. 어머님댁에서도 욕실화를 휙 벗어던진 내 습관을 보면 항상 놀라신다. 남편처럼 꼼꼼하고 완벽한 성향의 어머님껜 있을 수 없는 일에 가지련히 놓여 있지 않은 욕실 실래화 하나만으로 내 모습을 익히 파악하셨다. 각각 다른 내 모습은 언제나 공존한다.
젊을 땐 성취와 인정을, 나이가 드니 만족과 안정을 찾는 나로 바뀌고 있다. 더불어 바쁘고 분주하던 마음에 여유가 스며들었다. 인생의 흐름은 누구나 하나의 모습이 될 수 없다. 여러 모습의 자아가 공존한다. 바쁠 땐 철인 같이 강한 힘이 나오기도 하고, 마음이 여려질 때면 떨어지는 가을 낙엽만 봐도 괜시리 슬퍼진다. 나만 생각하며 살 때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변을 살피고 돌아보는 인정의 마음이 늘었다.
결혼 후 30년의 인생 그래프를 그리라면 10년은 치열하게 10년은 다채롭게 10년은 성숙하게 살아온 내 인생에 각각 다른 자아로 살아온 듯하다. 이제 다가올 10년은 깊어지는 가을 만큼 깊이 나를 다듬으며 여유있고 원숙해진 자아를 만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