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뭐라 카더노?
뚜, 뚜, 뚜, 뚜~
아침 6시 뉘우스를 하기 전
일기예보 방송이 짤막하게 있었다.
한 5분쯤? (기억이 가물가물)
날씨 따라 정해지는 오늘 농사일,
언제부턴가 부모님은 라디오의 날씨 예언가 말씀을 철석같이 믿으시고 그날 일을 정하셨다.
아버지, 새벽같이 들로 나가셔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초록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는,
바지게 한가득 소 먹일 꼴 베오시느라 바쁘시고,
엄마는 나무 땐 아궁이 매운 연기를 뒤집어쓰고 아침 준비로 바쁘시니,
거룩한 날씨 예언가 말씀 듣고 고대로 옮겨 전하는 일은 일찍 일어나던 내가 도맡았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어깨에 막중한 사명감을 올려놓았었다.
봇도랑 물, 달릴 채비를 시작하면 일기예보 카더라 방송 기자 덩달아 바빠졌다.
국민학생 나의 아침, 눈 뜨자마자 라디오 앞에 나아가 하품을 연거푸 뿜으며 일기 예보를 기다렸다.
30분 전에 마중 나가 서있던 내 귀가 꿈틀꿈틀, 기상천외한 세상 소식에 모든 잡음 끊어내고
꼼짝달싹 않고 라디오에 붙어 있었다.
이어지는 우리 지방 날씨 생방송이 끝나면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가 밥상 차리는 엄마에게
"맑다 카더라, 비 온다 카더라" 우리 동네 말로 재방송을 하였다.
놉을 해서 하는 벼와 보리타작, 모내기 날이 다가오면 부모님은 행여 비가 올까 노심초사하셨다.
날씨에 울고 웃는 농사일, 하늘의 도움이 절실할 때면,
이왕이면 반가운 날씨 전하고 싶어 그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었다.
앞뒤 걸출한 인사들 사이에서 막간을 비집고 들어 와 부리나케 송출되던 일기예보,
일이 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방송을 시작하였지만 끝마치는 시간은 정확했었다.
6시가 되기 5초 전, 날씨 방송 끝나자마자 뚜뚜뚜뚜 알림 후에 바로 6시 뉘우스 이어졌다.
날씨 아저씨, 6시가 되기 전에, 또박또박 발음으로 전국 날씨를 빠르게 읊었다.
처음엔 매일같이 들어도 낯선 소리, (기억이 흐리멍덩)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풍랑이 어떻고 저떻고, 바다 물결 어쩌고 저쩌고 불라 불라하였다.
이어서 오늘의 날씨,
서울을 시작으로 경기도 충청남북도 호남지방 제주도 영남지방 영서-영동지방, 울릉도 강원도
전국 팔도를 착 착 돌면서 '대체로 맑음, 한 때 소나기' 짤막 짤막 전달하였다.
굵은 쉼표 하나 없는 일기예보, 여차했다간 놓치기 십상인지라 두 귀를 바짝 세워야 했었다.
긴 마침표 하나 없는 일기예보, 자칫했다간 까막눈 되기 십상인지라 두 눈을 부릅뜨야 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라디오를 앞에 모셔두고 날씨 아저씨가 내뱉는 말, 싹쓸이 주워 담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빠릿빠릿 일기예보, 호남지방까지 거침없이 달려 내려왔다.
'이제 다 되었다' 귀와 눈을 한데 모으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다음 제주 날씨, 제주 지나면 내 차례,
받아쓰기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아저씨 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기 예보 아저씨 제주 가더니 나를 건너뛰고 다른 지방으로 날라버렸다.
아~ 우째 이런 일이?
'비행기 타고 날랐나?' 그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제발, 제발, 제발, 아저씨 저에게로 돌아와 주세요'
닿지도 않을 말, 들리지도 않을 말을 혼잣말로 수없이 애원하였다.
절대 한 눈 팔지 않았다.
라디오를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하여 공손하게 엎드려 있었다.
이목구비 총동원하여, 아저씨의 바른말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듣고 있었다.
그런데,
표준말 쓰는 아저씨를 바로 코앞에서 놓치고 말았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이를 어쩐담!
밥 짓는 엄마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를 어쩌남!
이른 새벽 들에 나가신 아버지 학수고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 결심했어!
다담바시 못한다는 소릴 들을까 봐
울거락불거락 아버지 얼굴 구경할까 봐
인류의 무궁한 발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
엄밀히 말하면 가정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나는 새하얀 거짓말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늘 보니 새파랬다.
쨍쨍한 햇빛 혀를 날름거리며 내 얼굴에 검은깨를 주야장천 박고 있었다.
가마니 꿰매는 긴 쇠돗바늘,
스웨터 짜는 대바늘, 코바늘
구멍 난 양말 꿰매는 실바늘
온갖 바늘 다 가져와 마구마구 찔러대어도 눈물 한 방울 떨굴 것 같지 않는 하늘, 차갑지만 뜨거웠다.
위쪽 지방부터 날씨 예보 내려올 때 오늘은 대동단결하여 맑다고 하였겠다.
종합하여 알쏭달쏭 우리 지방 오늘 날씨, 맑음이라 콱 찍었다.
기죽은 발걸음 미적미적 부엌으로 기어갔다.
풀 죽은 목소리 모기소리맨키로 새어 나왔다.
"엄마, 오늘 맑다 카더라"
"아이고마! 큰일이다, 비가 와야 모가 잘 자랄 낀데"
"이레 가물다간 농작물 다 말라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 양수기로 강물 끌어다 논에 물 데어야 쓰겠다"
학교 가서 바늘방석에 앉았었다.
1교시 마치고 창문에 매달려 하늘 한 번 올려다 보고
2교시 마치고 창문에 찰싹 붙어서 하늘 구름 헤아려보고
오르락내리락 들락날락 온종일 창가에 서성였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녁밥을 먹도록
시원한 소나기 한 자락 내리지 않았다.
둔갑 부리는 야시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근데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다.
난 정말 잘 듣고 있었다.
다음 차례 내 차례, 제주도 끝나면 내 차례라 귀 쑥 내밀고 있었다.
서울 아저씨, 호남 지방 지나 제주도로 건너가서 나를 건너 띄고
다음 지방으로 넘어갔다는 같다는 생각이 아직도 떠나지 않는다.
정말이지 너무나 기 막혔던 하루였었다.
1세대 나무색 라디오 목소리가 약해지자 새로이 장만했던 2세대 깜장 라디오, (기억이 어렴풋)
보이는 것이라곤 크고 작은 산밖에 없는 곳, 들리는 것이라곤 자연의 소리뿐인 곳,
깊은 골짜기 한 그루 나무처럼 살던 나에게 라디오는 기 막히게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이야기 말고 천리 밖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간 밤 일어난 바깥세상 이야기, 라디오를 통해 전해 듣고 산 너머 세상을 동경하였었다.
나와는 사뭇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바다 건너 이방인들의 이야기,
라디오가 들려주는 드넓은 세상 이야기에 꿈을 키웠었다.
날씨 예언가 어물적 퇴청하면
아버지 꼴을 한 바지게 지고 들에서 돌아오셨고 그에 맞춰 아침이 차려졌었다.
오글오글 둘러앉아 아침 먹고 나면 세상이 궁금한 아이들, 라디오 앞에 꼬물꼬물 모여들었다.
8시경 하던 아침 연속극 '즐거운 우리 집' (기억이 흐릿흐릿)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나눕시다 명랑하게 일 년은 삼백육십오일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어도
우리 집은 언제나 웃으며 산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노랫말에 고개를 갸웃갸웃,
하하 호호 웃음소리 풍선 태워 하늘로 띄우며 즐거운 우리 집을 꿈꿨었다.
오후에는 부녀 케미가 돋보였던 '능금집 처녀 쌀순이'를 들으며
밤도 좋지만 사과농사도 지어봤으면 했었다.
쌀순이에요
청바지에 농구화가 어울리지만 맨발로 뛰지요
이런 억척 저런 억척 황소고집이죠
그러나 인정엔 약해 사랑엔 약해 남몰래 눈물도 흘리지만
내 이름은 능금집 처녀 쌀순이에요
쌀순아~
쌀순이를 부르는 아버지의 털털한 음성으로 시작되었던 연속극,
엉성한 효과음에도 가슴이 콩닥콩닥, 벌렁벌렁 상상을 더해가는 묘미가 있었다!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 한 너의 말이 아리송해서
자꾸 하늘을 찔러대며 살았던 AM시대를 지나 FM라디오가 잠 못 들던 자취생의 오랜 밤을 함께 했었다.
기 막혔던 라디오 기 막히게 재밌었다!
보고도 잡지 못했고 듣고도 막지 못했던 시간 이탈자 날씨 아저씨 땜시 멘붕 왔었던 소녀,
세월 지나 슈퍼 컴퓨터보다 더 정확한 일기예보관을 몸에 심었다.
어느 누구보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웨스트 덕분에
더 이상 일기예보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도, 비설거지 걱정도 없지만
틈만 나면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그때 그 시절, 기막히고 기막혔던 사연에 웃음 짓는다.
* 브런치 이웃 작가님들 고맙습니다.
저의 유년기에 라디오가 세상 문을 열어주었다면 지금은 브런치가 그러하지요.
집순이인 제가 하루를 쪼개어 이웃님들의 글방을 여행하는 시간이 제일 설렌답니다.
빈틈없는 글, 웃음이 묻어나는 글, 배움이 가득한 글, 마음을 채우는 글.......
엉성한 글을 쓰는 저의 손이 납작 엎드려 예를 갖추지요.
그럼에도
제가 시간의 여유를 부리며 글을 읽고파 차마 구독을 눌러 드리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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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앞에 무거운 마음 여태 그랬던 것처럼 정독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느릿느릿한 저의 삶의 기록에
동행해 주시는 이웃님들께서도 가벼운 걸음 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