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춤과 한숨
한숨만 쉬어서 무엇하나 짜증만 내어서 무엇하리
인생 일장춘몽일진대 아니나 놀고서 무엇하나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고등학교 시절 지역축제 때, 공설운동장에서 구성진 태평가 가락에 맞춰 부채춤을 추었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 학예회날과 운동회날에도, 중학교 운동회날에도 빼놓지 않고 추었으니
부채춤은 여느 행사장에서나 등장하는 대표적인 단골춤인가 보다.
한숨이라,
살다 보니 한숨짓는 일이 자꾸 생겼다.
언제부터 한숨을 쉬었으려나,
숨 쉬듯이 한숨을 쉬었으니, 속상하거나 안도할 일이 꽤 많았나 보다.
'에휴' 한숨을 쉬다가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랫가락이 있었다.
설거지를 하다 한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우장장창,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키우기보다는 나는 태평가를 불렸다.
하고 많은 부채춤 반주 음악 중 태평가가 퍽이나 인상 깊었었는지 입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따가운 봄날 햇볕 아래 부채춤 연습하느라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시뻘겋게 그을렸던 탓이려나,
나는 부채춤 하면 태평가, 태평가 하면 부채춤이 떠오른다.
노랫말이 울화통 터지는 현실에 딱 들어맞는지라 한숨이 날 때면 나도 모르게 태평가를 흥얼거렸다.
'한숨만 쉬어서 무엇하리 짜증만 내어서 무엇하나 인생 일장춘몽일진대'
마음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시름을 툭 툭 뱉어내었다.
부채를 펼쳤다 접었다, 부채를 활짝 펴서 팔을 높이 들어 빙그르르 돌면 땅도 어지럽게 돈다.
꽃을 오므렸다 폈다, 성난 물결을 일으켰다 풀었다,
'얼싸 좋다 얼씨구나 좋아 봄나비가 이리저리 훨훨훨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노래가 끝나고,
족두리를 쓴 여고생들이 다소곳이 절을 하는 동작으로 부채춤이 끝나면
나의 한숨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노트북 앞에서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
내가 한숨을 쉰다며 기분이 안 좋냐고 아들이 물었다.
건강에 좋다 해서 숨 쉬기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 답했다.
20년 전에 같은 빌라에 살던 이웃이
"언니는 말할 때 한숨을 많이 쉬네요" 하였다.
"그래? 내가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쉬는가 보다" 하였다.
그러고 나서 나를 보니 정말 내가 한숨을 많이 쉬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올해 연초에
오빠가 전화통화 중에 한숨 좀 그만 쉬라며 뭐라 뭐라 하였다.
아! 지금도 내가 한숨을 많이 쉬고 있음을 자각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한숨이 아니라 숨 쉬기 운동이라고 우긴다.
한숨이나 숨 쉬기 운동은
초록이 동색이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겠는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건강을 위해 하는 깊은숨 쉬기 운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듯 다른 한숨과 심호흡.
보기에도 한 끗 차이인 것을, 이왕 하는 것 나는야 한숨을 숨 쉬기 운동으로 바꾸었다.
실제로 내가 숨 쉬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현대인의 필수 덕목,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한숨이 아닌 진짜 숨 쉬기 운동, 심호흡을 의식적으로 행한다.
폐포에 산소 출입이 원활하지 않은 것 같아 이를 해소하고자 짬짬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어낸다.
간혹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나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저 멀리 아들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그것이 뭐든 간에 '엄마 지금 숨 쉬기 운동 중이야'라고 설레발을 친다.
아들,
엄마는 지금 심연의 명상을 하고 있단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조용히 지나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