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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Nov 24. 2023

잡아라. 보석 도둑.

지금. 되돌릴 수 없는 순간 #2

 너에게는 이 세상에 밝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만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삶의 어둡고 쓰디쓴 부분은 천천히 겪었으면 바라는 나의 마음은 욕심이겠지?


 아이가 1학년이 되고 나서 같은 반 친구 중에 영혼의 단짝 혹은 샴쌍둥이 같은 느낌의 친구를 만났다. 성격과 취향이 매우 닮았던 그 둘은 어느 순간부터 지퍼백에 장난감 보석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교 후 일명 ‘보석숲’이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누군가가 버려두고 간 투명하고 알록달록한 장난감 보석이나 구슬을 찾아 주웠다. 그러다가 학교 정문 앞에 있는 보석 뽑기 기계를 발견하고는 새로운 보석이 갖고 싶어서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어린이가 되기도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이는 친구와 소중하고 행복한 놀이 시간을 즐겼다. 놀이터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숲에서 농사도 짓고 땅도 개발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는 사이 보석이 가득 담긴 지퍼백을 땅바닥에 놓고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아이가 학원을 갈 시간이 되어서 이제 출발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이 심상찮다. 그 사이 보석이 사라지는 신기루를 경험했다. 아이는 이내 울음이 터질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내가 여기에 보석이 들어 있는 봉지를 놔뒀었는데 없어졌어.”

 나는 깜짝 놀라서 다른 곳에 두고 온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 엄마가 방금 전에 아이들 곁에 갔을 때도 농사짓던 공간 옆에 놓고 둘이 놀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놀이터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미끄럼틀에서 놀던 누나들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여기에 보석 들어있는 봉지가 있었는데 혹시 못 봤어?“

 누나들이 각자 답을 하느라 소란스러워졌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니?”

“너 속상하겠다.”

“누가 훔쳐갔나 봐.”

 내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누나들이 못 봤구나.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자. 얼른 가서 놀아~~”

 누나들이 떠나고 아이와 친구는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힌트를 찾았어. 어떤 사람이 아까 화분을 저기도 두고 갔는데 그 사람이 가져간 것 같아. “

“나 아까 어떤 아저씨를 봤는데 한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어. 혹시 보석이 있던 게 아닐까?“

 아이들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며 친구 엄마와 마주 보고 웃었다.

“우리 이제 진짜 헤어질 시간이야.”

 아이 친구가 엄마랑 놀이터를 조금 더 찾아보겠다고 말해주었고 아이는 고마워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길을 걸어가던 중 아이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위로해 주려고 이름을 불렀다. 아이는 눈물을 삼키며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내가 그 보석을 모으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를 거야. “

 아이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어서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며 내 입을 쳐다봤다.

“엄마가 초등학교 때 버스를 타고 사물놀이 대회를 나간 적이 있어. 그때 할머니가 엄청 비싼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싸줬었어. 그런데 버스 아저씨가 버스 문을 열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엄마 텀블러를 가져갔나 봐. 집에 돌아와서 할머니한테 누가 훔쳐간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 할머니가 내 얘기를 듣고 다시는 비싼 보온병을 사주지 않겠다고 했어. 처음엔 속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깐 할머니 마음도 이해가 되더라고. 그래서 할머니한테 좀 미안했어.

“나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안 드는데. “

 아뿔싸. 뒷말은 괜히 했다고 후회했다.

“어어. 그럼 당연하지. 너는 처음 잃어버린 거고 엄마는 보온병 두 번째 잃어버린 거였어.”

“나는 처음 잃어버린 거니깐 다시 사줘.”

 괜스레 절약 정신을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주운 것도 있었기 때문에 똑같은 개수를 사줄 수는 없다고 타일렀다. 다행히 아이는 잘 수긍했고 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에 가서 뽑기를 하고 오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보석 골고루 뽑아줘”

“알겠어. 잘 다녀와.”


 아이를 학원으로 보내고 곧장 집에 와서 지폐로 바꾼 다는 걸 차일피일 미룬 동전 주머니를 열었다. 주섬주섬 동전을 챙겨서 학교 정문으로 향했다.

두리번. 두리번.

 혼자 보석 뽑기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머쓱해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필이면 중학생 두 명이 길을 지나가다가 뽑기 앞에 서 있는 아줌마를 빤히 지켜보고 서 있었다. 동전을 꺼내려고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5백 원짜리 동전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나는 계속 코트 안에 손만 찔러 넣은 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아이들 지나가면 뽑기를 돌리기로 결심한 그 순간 아이 친구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안 울고 학원 잘 갔어?”

 나는 뽑기 기계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나 지금 이 앞에 서 있어.“

“그래도 그거 받으면 좋아하겠다.”

 아이가 좋아할 것이라는 말에 1톤 트럭 같던 동전을 가볍게 주머니에서 꺼냈다. 오랜만에 해보는 뽑기 기계인 탓에 어느 쪽이 동전 넣는 입구인지 헤맸다. 드디어 5백 원이 움푹 파인 홈에 끼워졌다. 가스레인지 버튼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두 바퀴 돌렸다.

드르륵. 드르륵. 툭.

 처음 본 보석 모양이었다. 그렇게 난 세 개의 보석을 더 뽑아서 가방에 살포시 넣고 발길을 돌렸다.


 아이와 다시 만났을 때 속상한 마음이 많이 풀린 상태였다. 그러고선 학원에서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던 아저씨는 범인이 아닐 거래. 왜냐하면 원래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많기 때문이래. 그리고 다른 친구가 그랬는데 산책하고 있던 할머니도 범인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대. “

 그렇게 아이는 친구들과 탐정이 되어 며칠 동안 보석을 훔쳐간 범인 추리 놀이에 빠져들었다.



 아이가 안전 교육을 듣고 와서 집에 도둑이 들어올까 봐 무서워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도둑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고 안심시켜 줬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도둑이란 걸 경험하게 되어 유감스럽다. 앞으로 다양한 인생의 굴곡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너의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다. 힘들 땐 엄마한테 기대어 울어도 괜찮아. 너의 등을 토닥여주며 전부 다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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