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미국에서 결혼식을 준비해야 한다면 따뜻한 위로와 함께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현재도 결혼을 준비하고 있고 이제 한 달 여일 정도를 앞두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일여 년간의 연애를 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24일,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이곳 시애틀로왔다.
시애틀에는 여행으로만 두서너번 정도 왔었고 남편과 연애할 당시에도 우리는 주말 커플이었기에 구석구석 이곳저곳을 돌아보지는 못했었다.
말 그대로 낯선 땅, 낯선 도시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다. 친정 가족들도 친구도 직장동료도... 아무도 없고 오로지 시댁만 있는 이곳에서 '우리들의 결혼식'을 준비해야 한다.
평생 살면서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다른 서양 웨딩식에 한 번도 참석을 해본 적이 없다. 직접 눈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결혼식을 준비하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없어서 그린카드(영주권)가 나오기 전까지 강제적 백수로 지내야 했고 나에게는 많은 시간들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1. 예식장 (Venue) 선정하기
대략적인 결혼식 달은 양가 부모님과의 합의 하에 올해 늦은 봄이나 여름을 생각했기에 이 시기에 가능한 날짜가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Venue in May, Venue in Seattle, wedding banquet 등 다양한 검색어로 주변 웨딩홀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결혼식은 ceremony(예식)와 reception(피로연) 두 부분으로 진행된다. 예식은 웨딩홀이나 교회 등에서 하고 피로연은 레스토랑으로 이동을 하여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동 없이 한 공간에서 예식과 피로연을 하기를 원했기에 이에 맞추어 예식장을 알아보았다.
(사진 : The golf club at new castle)
우리는 따로 웨딩사진 촬영을 찍지 않고 예식 당일에만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예식장은 무엇보다도 뷰를 예쁜 곳으로 정해서 사진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다.
The golf club at new castle.
직접 방문하여 눈으로 본 이곳은 일단 확 트여있는 뷰가 너무 좋았다. 사진 촬영을 하면 너무 예쁠 거 같았고 특히 선셋이 있을 때쯤 사진을 찍으면 환상적으로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탁 트인 조망, 예식과 피로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 신랑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건들이 얼추 맞은 듯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결국 이곳 웨딩홀은 위치 때문에 선택받지 못했다. (집에서부터 이곳까지 가는데 교통체증이 상당한 구간을 지나야 만 한다)
그 후 몇 군데 예식장을 더 알아보던 중 아버님의 추천으로 적당한 곳을 찾게 되었다.
(사진 : Embassy Suites Hotel)
이곳을 선택한 이유 :
첫째, 예식과 피로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 둘째,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 (게스트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랑 쪽 친구들이 모두 이 동네 근처에서 살고 있다) 셋째, 합리적인 예식 비용 (다운타운 내 호텔들은 식비와 장소 대여비가 상당히 비싸다) 넷째, 넓은 주차 공간 다섯째, 실내 공간으로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기는 호텔 투숙객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오픈된 공간이다.
낯선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거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긴장이 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모르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의 축하 인사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는가!
약속을 잡고 자세한 세부사항을 듣기 위해 웨딩 매니저를 만나러 갔다.
우리는 예식 날짜와 하객수 등 정보를 제공했고 부지런히 노트에 적던 매니저는 이곳저곳 호텔 공간을 소개해 주며 피로연 장소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매니저에게 물어보았다.
"이 호텔에서는 어떤 것들을 제공해 주니?"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 적당한 꽃 장식, 포토 테이블 서비스 정도? 한국 예식을 상상해 보던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어. 장소만 빌려주고 식사만 준비하는 거야."
"음악은? 에이 설마, BGM 서비스는 당연히 해주겠지 그래도 호텔인데..."
"DJ를 불러야 해. 그건 신랑, 신부가 알아서 하는 거야"
DJ? 클럽에서 볼 수 있는 그 DJ? 호텔에 음악을 깔려면 DJ를 따로 불러야 한단다. 그리고 보통 reception(피로연) 때 신랑, 신부가 first dance (하객들 앞에서 춤추는 시간)를 갖는 시간이 있는데 이 때도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DJ가 필요하다고했다.
Ceremony 시간에는 세상 얌전한 공주가 되었다가 reception 시간에는 신랑과 신나게 춤을 추며 세상 신나게 잘 노는(?) 두 얼굴의 신부가 되라는 거야 뭐야.
들으면 들을수록 익숙하지 않은 여기 웨딩문화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점점 나는 유체이탈이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귀는 열려 있지만 반사적으로 몸은 점점 멀리 가버리는...
매니저 말을 들으며 언뜻언뜻 외국 영화에서 보았던 결혼식 장면들이 생각이 났다. 신랑, 신부가 하객들과 즐겁게 술잔을 부딪히고 늦은 밤까지 춤을 추던 장면 장면들.
80프로가 신랑 하객들인 결혼식장 그 분위기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즐겁게 춤을 추며 그 시간들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막막함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신랑 신부가 행진할 때 쓰는 하얀색 카펫도 준비해 오라고 했다.
말 그대로 예식장과 피로연 공간, 그리고 식사만 준비해 주고 나머지는 신랑 신부가 알아서 다 준비해야 한다.
점점 얼굴이 굳어져 가는 나에게 매니저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May, 이건 너의 웨딩이야. 너의 날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다 해"
이 말이 더 무섭다. 나는 한국처럼 잘 세팅되어 있는 결혼 패키지들 상품에 숟가락만 잘 얹어놓고 싶은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로 시작했다가 이런 걸 어떻게 하지?로 서서히 마음이 바뀌고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