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를 하며 방문한 티룸들
영국에 살 때 컨디션이 나쁘거나 감기에 걸리면 따뜻한 Tea를 한잔 마시라고 했다. 무슨 만병통치약도 아닌데 말이다. 영국사람들은 Tea를 참 많이 마신다. Swansea에서 공부할 때 영국학생 여러 명과 한 집에서 일 년 여 지낸 적이 있다.
일어나서 학교에 가기 전 아침에 한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한잔, 그룹 스터디를 하거나 공부를 시작할 때 한잔, 식사 후 한잔, 오후에 피곤해질 때 또 한 잔…. 이런 식으로 하루를 차와 함께 보냈다.
차를 마시는 방법도 조금씩 달랐다. 티 백을 먼저 넣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 사람이 있고, 뜨거운 물에 티 백을 담그는 사람, 우유를 먼저 붓고 그 위에 뜨거운 물과 티 백을 넣는가 하면 반쯤 물을 붓고 차를 우린 후 물을 더 붓는 사람. 티를 우려내는 시간도 모두 틀렸다. 차가 적당히 식을 때까지 티 백을 우려내는 사람이 있고, 차를 다 마실 때까지 티 백을 꺼내지 않는 경우도 있고, 물을 몇 번이고 더 부어서 마시는 사람, 티 백을 여러 개 넣어서 마시는 등등.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주로 커피를 마셨다. 집에서는 커피를 분쇄기에 갈고 우유거품을 만들어 제법 그럴듯한 커피도 만들어 마셨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주로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인스턴트커피가 좋아서 마셨다기보다는 다른 직원과의 대화의 매개체 혹은 회의 시작 때 분위기를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시다 보니 인스턴트커피도 맛있었다.
40대가 되어 홍차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도 커피를 좋아 하지만 커피와는 다른 홍차만의 매력이 있다. 맛있는 커피는 비싼 기계와 추출하는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홍차는 좋은 차를 구하고 거기에 맞는 나만의 방식을 몸에 익히게 되면 커피보다는 손쉽게 만족도 높은 차를 만들 수 있다.
차를 만드는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1. 좋은 차를 준비한다.
2. 차에 맞는 물을 준비한다.
3. 차를 마실 컵과 티폿을 예열한다.
4. 차가 우려 지는 시간을 잰다.
차는 Tea Bag 보다는 Tea Leaf이 더 좋은 향과 맛을 낸다.
좋은 차를 구해도 맞지 않는 물을 사용하면 차 맛이 좋지 않게 느껴진다.
연수(경도 78ml 이하)와 경수(경도 150ml 이상)
연수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낮은 물이다. 주로 암반이 있는 지형의 물
대표적 물로 삼다수가 있다.
연수는 섬세한 맛과 탕 색이 맑은 차를 우린다.
경수는 빗물이나 해안가의 물이 대표적이며 미네랄의 농도가 높다.
대표적 물로 Evian이 있다.
경수는 향이 작고 맛이 터프하고 색이 탁 하다.
녹차를 경수로 만들면 탄닌성분 때문에 쓴맛이 난다. 녹차는 연수로 만들어야 맛있다.
연수가 맛있는 차 잎의 성분을 충분히 끄집어낸다.
홍차를 만드는 333 골든룰이라는 게 있다.
차 3g에 물 300ml를 놓고 3분간 우린다.
이건 유럽인들 기준이고 자기 취향을 찾아서 차의 양도 우리는 시간도 정하면 된다.
이러한 행위는 모두 시간과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회사에서 잎 차로 차를 우려 마시는 건 힘든 일이다.
요즘은 좋은 품질의 Tea Bag도 많기 때문에 맛있는 차를 손쉽게 마실 수 있다.
Tea Bag은 영국이 산업화가 되면서 차를 만드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발명되었다.
그 덕분에 아침 일찍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빠르고 간편하게 차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일본이 1961년 티백기계를 만들어 보급하면서 티는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 되었다.
Afternoon Tea
오후 2시~5시경에 마시는 차로 1840년대 영국에서 시작한 티타임이다. 처음에는 귀족이 즐겨 마셨으며
티 푸드(Tea Food)로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등을 곁들여 차를 마신다.
High Tea
High Tea는 주로 4시 이후에 마신다. Afternoon Tea와의 차별점은
고기요리가 한 가지 포함된다. High Tea는 이른 시간에 먹는 가벼운 저녁이다.
티 타임과 저녁 시간을 모두 갖기 어려운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을 위한 티 타임이다.
3단 Tray
구성은
제일 위에 조각 케이크 등의 디저트를 둔다
중간은 대부분 스콘을 둔다.
제일 밑에는 샌드위치나 식전음식을 둔다.
고급 티 룸에서는 3단 트레이와 함께 샴페인을 시킬 수 있다.
각 티 룸마다 그들 나름대로의 스토리와 구성이 있다.
3단 트레이의 샌드위치는 얇게 저민 오이가 들어간다.
스콘은 원래 맛없는 음식이다. 정통 스콘은 뻑뻑하고 푸석해서
클로티드 크림이나 잼을 함께 곁들여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나이가 든 후에 차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차 자체보다는 멋진 티 룸의 매력에 빠져서다.
나는 8년전부터 일년에 보름씩 4~5개 나라를 방문하며 세계일주를 하고있다. 목표는 70개 국이다.
내가 방문했던 나라의 티 룸을 소개하겠다. 오늘은 캘리포니아의 티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고모님 댁 근처에 멋진 티 룸이 있다. 많은 티 룸을 다녔지만 그 집만큼 좋았던 집은 없었다. 40대의 러시아 이민자 자매가 운영하는 티 룸인데 계절마다 바꾸는 예쁜 데코레이션도 좋았지만 손님들을 대하는 주인의 태도가 훌륭했다.
난 그 티 룸이 좋아 몇 번 갔었는데 한 번은 40쯤 되어 보이는 러시아 여자가 와서 주인에게 돈을 주려고 하고 주인은 돈을 안 받으려 한참 실랑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 돈을 주러 온 사람이 고마운 얼굴을 한껏 지으며 다시 돈을 집어넣고 그 집주인에게 감사와 축복을 말했다. 그 어떤 여배우가 그날 내가 본 그 여자의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난 그 돈액수가 얼마인지 모른다. 러시아 말로 대화를 해서 무슨 이유로 돈을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외국에 가서 살면 모든 것이 서럽다. 말이 서투르고 풍습이 서투르고 아는 이 없는 외국에서 이런 넉넉한 마음의 사람을 만나는 건 큰 행운이다. 그 티 룸의 메뉴에는 행복이나 사랑이라는 메뉴는 없었지만 그 티 룸 가득 배려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미국방문 때 이 티 룸에 또 가고 싶다.
여러 티 룸을 가보았지만 이 집만큼 만족도가 높았던 곳은 없었다. 최고의 TEA나 음식이 제공되지는 않는다. 따뜻한 마음의 주인이 정성껏 만들어준 차와 음식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준다. 난 새로운 곳에 가면 주인이나 매니저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자신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이건 귀찮아하거나 바빠서 피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의 삶에 자신이 있고 음식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 손님과 이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왠지 판매하는 상품에 더 믿음이 간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군산에 갔을 때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어느 여자분이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식사를 와서 아이가 어리니 2인분만 식사를 주문해도 되냐 고 묻고 2인분을 주문했다. 그 집은 음식을 시키면 계란프라이를 하나씩 주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계란도, 국도, 밥도 사람숫자에 맞게 세 그릇을 주었다. 미안해하는 여자분에게 밥모자라면 더 갖다 먹으라며 전기밥솥째 방에 가져다주시고는 나가셨다. 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는 미식가에다 까다로운 성격이라 평소 식사를 하면 이건 짜다, 싱겁다 말이 많았는데 그날은 맛있다 만 연발 하며 식사를 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가끔 그 집 이야기를 하며 그 할머니의 넉넉함을 한 번씩 추억한다. 그 집은 나중에 허영만의 백반기행에도 출현했던 군산의 뚱보식당이다. 작년에 갔을 때는 할머니는 안 계시고 직원분이 밥을 주셨는데 죄송한 얘기지만 주는 사람이 틀려서 인지 영 그 맛이 안 났다. 내 입맛이 변한걸 수도 있으니 내년쯤 한번 더 가봐야겠다.
그때는 주인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 좋겠다.
음식은 혀와 눈으로만 즐기는게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전달해 주는 멋진 매개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