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에브라이카, 리코타 사워체리 크로스타타
로마만큼 오래된 세월 동안 중심이 되었던 도시가 또 있을까?
그 오래된 세월만큼 로마에서 접하는 많은 것들에서는 숨겨진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그중에서 티베강에 고립되어 있는 테베레섬 북쪽에 위치한 로마 유대인 지구 게토(ghetto)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에는 300년간의 강제고립으로 인해 유지되고 발전한 중세 로마음식의 흔적을 맛볼 수 있기에 로마 하면 빠질 수 없는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과거 벽으로 둘러있던 게토의 서쪽 입구에 들어서면 현지인에서부터 관광객까지 남녀노소 길게 서있는 대기줄을 볼 수 있다. 그 줄의 시작점으로 눈을 돌리면 간판도 없는 코너의 작은 가게에 다다른다. 허름한 돔형창문에 비치는 거뭇하게 탄듯한 타르트들. 바로 게토에 유일하게 남은 ‘코셔(kosher)’ 베이커리인 ‘파스티체리아 보치오네(Pasticceria Boccione)’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보치오네는 대를 물리며 아직도 전통적인 레시피를 고수한다. 겉이 거뭇하게 타서 맛있을까 의문이 가는 ‘리코타 사워체리 크로스타타(crostata di ricotta e visciole)’에서 ‘피자 에브라이카(pizza ebraica)’까지 판매대 뒤편 여인들의 무뚝뚝한 손길 속에서 쉴 새 없이 판매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동안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으로 오랜 터전이었던 로마에서 끌려갔던 유대인 중, 기적적으로 강제징용을 피한 한 여인으로 인해 우리는 역사의 흔적을 아직도 맛볼 수 있다. 바로 보치오네의 공동오너 중 하나인 그라지엘라(Graziella)의 할머니 이야기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징용으로 인해 게토에 있던 많은 유대인 베이커리가 그 역사의 마침표를 찍을 때, 생존한 그라지엘라의 할머니는 전쟁 후, 어린아이들을 맡겨놓고 보치오네 베이커리를 재오픈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이 모든 역사를 자부심으로 간직한다.
보치오네의 대표적인 제품인 ‘리코타 사워체리 크로스타타’에 관련된 한 가지 이야기에서는 유대인들의 융합과 저항, 재치와 자부심의 역사가 간직되어 있다.
18세기 바티칸에 의해 유대인들의 유제품 판매가 금지된다. 이것은 단지 유대인을 치욕적으로 억압하기 위한 하나의 어이없는 조치로써 게토 밖을 나설 때는 창녀나 입었던 노란색 옷을 입어야 하는 등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들은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유제품이 들어간 크로스타타 위를 한 겹의 도우로 덮어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사실진위를 떠나서 억압의 역사를 대변하는 그들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우리가 이탈리아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는 피자가게를 볼 수 없는 게토에서 또 하나의 대표적인 디저트로는 ‘피자 에브라이카‘를 들 수 있다. 아몬드, 건포도, 설탕절임과일이 울퉁불퉁 모습을 내비치고 묵직하지만 부드러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것은 문자 그대로 ’유대인의 피자’라는 뜻으로 예전에는 피자가 단지 ‘파이(pie)’라는 뜻으로 통용되었다고 것을 알 수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악명 높았던 스페인의 종교재판을 피해 도망온 세파르딤 유대인들이 그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시칠리아를 통해서 로마로 들여왔고,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 말 그대로 유대인들의 피자(파이)라고 전해진다.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피자 에브라이카는 아마 중세와 현대를 이어주는 마지막 달콤한 보루의 맛이라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100년 후에도 이들의 자부심이 이어질 것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The beauty of being who you are and being respected for what you do.”
Pasticerria Boccione
주소: Via del Portico d'Ottavia, 1, 00186 Roma RM, Ita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