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야! 천천히 오기를
친정 근처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신선식품 쇼핑을 하지 않는 부모님께는 수박 같은 무거운 과일을 골라놓고 집에 배달까지 해주는 덕에 나름 요긴한 슈퍼마켓이었다.
만 1년 만에 방문한 친정. 우유를 사러 나갔는데 슈퍼마켓이 있던 그 자리는 젊은 감성의 솥밥집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 속상함이란.
대형 슈퍼마켓이 이미 시장을 점령한 런던에선 이런 류의 소형 슈퍼마켓은 보기 힘들다. 유기농 판매 같은 특정군이 아니라면 존재하긴 하지만 거기서 장을 보는 그런류는 아니다.
그래서 인간미 넘치는 이런 슈퍼마켓이 더 소중했는데.
나이 든 사장님의 손길로 진열된 매대이기에 어딜 가도 똑같은 대형 프랜차이즈처럼 균일화되지 않았던.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너무 짧은 시간에 세상이 변한 한국에선 각 세대들이 자라온 환경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서 이렇듯 아직 간직하고 있는 감성을 누리지 못하고 현대화되어 새로 개업한 솥밥집에 접근하지 못할 그런 세대가 생긴 것 같다.
영국에서 어느 카페에 가던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부터 노년층 고객까지 섞여 앉아있는 그런 풍경을 한국에서 보기 힘든 것이 안타깝다.
변화는 하되 융합을 전제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신축 때 들어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아파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반쯤 솟아있었다. 40년이란 세월이 건물이 마모될 시간인가? 아직도 로마에서 자기가 태어난 오래된 건물을 바라볼 수 있는 남편이 부럽다.
이러다 색 없는 현대화란 겉치장만 남을까 봐 걱정이다.
난 결국 근처 편의점에서 우유를 샀다.
편리는 하지만 정감은 가지 않는.